23일 제주시 구좌읍 해안도로에서 전동킥보드 타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원희룡 제주지사. 제주도 제공
원희룡 제주지사는 23일 오전 제주를 찾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참배를 마치고 제주시 구좌읍 신재생에너지홍보관으로 이동하면서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신재생에너지홍보관이 있는 구좌에선 전동 킥보드를 함께 탔다. 국민의힘 당 대표와 대선 주자 관계인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끈끈한 모습을 과시한 것이다.
제주도청은 이날 원 지사와 이 대표가 방문하는 곳마다 잇따라 사진을 포함한 보도자료를 냈다. 도는 이날 ‘전동킥보드 타는 원희룡 도지사와 이준석 대표’ ‘신재생에너지홍보관 방문한 원희룡 도지사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등 여러 꼭지의 보도자료가 쏟아졌다.
제주도는 전날인 22일 원 지사와 이 대표의 제주도 동행 일정을 미리 공개했다. 원 지사가 지난해 11월 당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방문했을 때 만난 적이 있어 이날 이 대표를 만난 것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사뭇 다른 원 지사의 잣대였다.
원 지사는 이달 상순 코로나19 방역을 언급하며 공개적으로 이재명 경기지사의 제주도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원 지사는 지난 11일 예정됐던 이 지사의 제주 방문을 이틀 앞두고 방문 자제를 요청했다. 원 지사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제주 방역이 무너지면 제주경제도 국민관광 힐링도 치명상을 입는다”며 “이 지사와 경기도의회, 제주도의회 간 행사가 강행된다면 제주도의 절박함을 외면한 처사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이에 이 지사는 방문 자제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경기도 공무방문단 10여명이 제주도 방역행정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이 지사는 당시 제주도와 경기도, 제주도의회, 경기도의회 등 4자 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공동대응 업무협약’ 체결, 4·3유족회 등과의 간담회, 이재명 지지모임인 제주민주평화광장 출범식 강연 등의 일정을 준비했지만 방문이 무산되며 취소됐다.
하지만, 열흘 여 뒤.
원 지사는 제주도를 찾은 이준석 대표와 내내 일정을 함께 했다. 제주더큰내일센터에서는 함께 청년 간담회도 함께 진행했다.
도민들 사이에서는 원 지사가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아무개(59)씨는 “대선 주자로서 같은 당 대표 방문에 동행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원 지사가 이 대표와 동행하면서 이재명 지사한테는 방역문제를 들어 오지 말라고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원 지사는 줄곧 서울을 드나들며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있지 않으냐. 이 지사의 제주 정치 행보를 견제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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