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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오월 그 마지막 밤 도망치며 했던 ‘다짐’ 이제야 지켰네요”

등록 2021-05-25 22:01수정 2021-05-26 02:35

[짬] 광주 한국화가 하성흡 작가

‘마지막 날 도망쳐 나왔다. 무섭고, 두려웠다. 1980년 5월26일 밤 시민군이 있는 도청으로 향하지 못했다. 전일빌딩 옆길로 빠져나오면서 고3(대동고)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금남로에서 멀지 않았던 집으로 뛰어가면서 “그림으로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 새벽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지켜주십시오”라는 애절한 방송을 들었다. 그날 이후. 5월에 빚진 마음으로 살았다.’

최근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80)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완성한 하성흡(59) 작가는 24일 “이제야 그 다짐을 지킨 것 같아 후련하다”고 말했다.

그의 부채의식은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1981년 전남대 미술교육과에 진학한 그는 전공을 서양화에서 한국화로 바꿨다. 역사 기록화를 그리기 위해서였다. “이태호 선생 수업을 들으면서 서양화로는 세밀한 묘사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3때 ‘5·18’ 진압 피해 26일 밤 귀가
‘그림으로 사실 알리겠다’ 스스로 약속
전남대 입학 기록화 그리려 전공도 바꿔

2019년부터 ‘윤상원 일대기’ 작업 시작
유년기·시민군·부활 등 12개 소주제
27일부터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 전시
“경이로운 삶에 감동해 눈물로 그려”

5월27일~6월13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 전시를 앞두고 하성흡 작가가 작품을 마무리 중이다.
5월27일~6월13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 전시를 앞두고 하성흡 작가가 작품을 마무리 중이다.

1990년 5·18을 다룬 첫 벽화(전남대 광주민중항쟁도)의 밑그림을 그렸고, ‘1980. 5. 21. 발포 후’ 등의 작품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 윤상원의 삶을 그림으로 그리겠다는 구상을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하 작가는 2019년에서야 광산구의 공모전에 선정되면서 윤상원의 삶을 화폭에 담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 작가는 윤상원의 유년기부터 들불야학 교사, 시민군 대변인을 거쳐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산화하기까지의 삶을 크게 12가지 소주제로 나눴다. 소주제는 일기-방황-외교관-귀향-노동자-분노-투사회보-발포-광천-대변인-죽음-부활 등이다. 120호 크기의 작품 9점, 500호 크기의 대작 3점, 소품 100여점에 12개의 소주제를 압축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는 오는 27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자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6관에서 <역사의 피뢰침, 윤상원> 제목으로 전시회 개막식을 연다. 이어 6월13일까지 그림을 공개한다. 작품들은 이어 광산구 신룡동 생가 옆에 들어설 ‘윤상원 민주커뮤니티센터’에 걸린다.

윤상원의 유년기를 그린 `일기'. 하상흡 작가 제공
윤상원의 유년기를 그린 `일기'. 하상흡 작가 제공

작업은 처음엔 다소 터덕거렸다. 하 작가는 “한 사람의 삶을 몇 개의 그림으로 상징화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고인의 사진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평전을 읽고 유족들과 고인의 선후배, 옛 동지들을 인터뷰했다. 특히 김상윤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을 만나 “그때 상원이가 얼마나 외로웠을까?”라고 회고하는 말을 듣고, ‘홀로 외롭게 실천했던 사람’이라는 열쇳말을 잡을 수 있었다. “5·18이 터졌을 때 선후배들은 이미 잡혀가거나 피신해버린 상황에서 그 엄청난 ‘사태’를 의논할 사람이 전혀 없었거든요.”

작품 ‘광천’(광주천의 줄임말)엔 죽음을 각오한 윤상원의 의지를 형상화했다. 윤상원은 80년 5월25일 사직공원에서 기독병원 레지던트였던 전홍준씨를 만났다. 시민대책수습위원회가 무기반납을 결의하고 도청을 빠져나간 뒤였다. 전홍준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 군인들이 진입하기 전에 광산동 아는 집으로 피신하라”고 권유했다. 윤상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상황이 마무리되려면 누군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 작가는 ‘대변인’이라는 소주제를 따로 뽑았다. “윤상원이 시민군 대변인을 맡은 것은 어차피 진압을 당할 상황에서 역사에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서였다고 봅니다.”

‘대변인’이라는 소주제엔 ‘그의 인간선언’을 담았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 계엄군의 진압 전 만난 외신기자들 앞에서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 작가는 “이 말은 ‘인간으로서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고 말했다.

5·18 민중항쟁 촉발한 계엄군의 무차별 폭력 진압 순간을 그린 `발포'. 하상흡 작가 제공
5·18 민중항쟁 촉발한 계엄군의 무차별 폭력 진압 순간을 그린 `발포'. 하상흡 작가 제공

1980년 5월25일 광주천을 걸으며 죽음의 항전을 결심한 윤상원의 모습을 그린 `광천'. 하성흡 작가 제공
1980년 5월25일 광주천을 걸으며 죽음의 항전을 결심한 윤상원의 모습을 그린 `광천'. 하성흡 작가 제공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이 외신기자회견에서 결사항쟁을 선언하는 장면을 그린 `대변인'. 하상흡 작가 제공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이 외신기자회견에서 결사항쟁을 선언하는 장면을 그린 `대변인'. 하상흡 작가 제공

하 작가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많이 울었다. 황지우 시인이 작업실을 방문해 그에게 “‘왜 우느냐?’”고 물어 “자꾸 눈물이 난다”고 답했던 적도 있다. 윤상원의 외로움과 처절한 투쟁 의지가 ‘접신’하듯 몸에 스며왔단다. 하 작가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경이로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12번째 소주제의 제목은 ‘부활’이다. 윤상원은 노동운동 동지로 영혼 결혼식을 한 고 박기순(1957~78)과 손을 잡고 미소 짓고 있다.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주변에 ‘촛불 바다’가 꽃밭처럼 펼쳐진다.

영혼결혼을 한 윤상원(오른쪽)과 박기순(왼쪽)을 그린 12번째 소주제 ‘부활’. 하상흡 작가 제공
영혼결혼을 한 윤상원(오른쪽)과 박기순(왼쪽)을 그린 12번째 소주제 ‘부활’. 하상흡 작가 제공

하 작가는 “6월항쟁과 촛불항쟁을 거쳐 ‘오늘’을 이룬 게 5·18항쟁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5·18 10일간의 경험을 작품으로 그릴 생각이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심우재’라는 필명으로 핵심적 활동을 했던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남은 숙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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