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의 광천시민아파트에서 들불야학과 `임을 위한 행진곡'의 흔적을 더듬었던 <한겨레> 2017년 5월20일 1면 기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호남 최초 노동자 야학인 ‘들불야학’의 숨결이 깃든 광천동 시민아파트를 보존하려는 광주 시민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5·18 항쟁과 관련해 역사적 상징성이 큰 들불야학 학당 복원도 추진된다.
광주시와 서구청, 천주교광주교구청, 광천동재개발조합은 25일 광주시청 비즈니스룸에서 ‘시민아파트 보존 및 들불야학 학당 복원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로써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고향이자 들불야학의 근거지인 서구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보존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시민아파트는 재개발 정비 사업이 예정돼 3개 동 모두가 철거될 상황이었다.
광주시와 서구청, 천주교광주교구청, 광천동재개발조합이 25일 오후 2시 광주시청 비지니스룸에서 ‘시민아파트 보존 및 들불야학 학당 복원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광주 서구청 제공
1969년 광주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연립주택(184가구)인 시민아파트는 호남 최초 노동자 야학인 들불야학의 근거지다.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80)은 박기순이 주도했던 들불야학에 참여하면서 시민아파트 나동(당시 B동) 106호에 입주했다. 들불야학은 광천동 성당 안드레아 교리실에서 출발해 1979년 시민아파트 다동 2층 방으로 옮겨 명맥을 이어갔다.
1980년 5·18 때 계엄군의 학살을 고발한 <투사회보>를 제작한 곳도 시민아파트였다. 영혼결혼식을 한 윤상원·박기순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들불야학 강학·학강들과 유족들이 5·18 광주민중항쟁 37주년을 앞두고 들불야학이 태동했던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성당 앞에 함께 섰다. 왼쪽부터 서대석 서구청장(들불야학 강학(교사)), 윤순호(들불야학 학강), 김순자(들불야학 강학 고 김영철씨 부인), 임낙평(들불야학 강학), 윤태원(윤상원 시민군 대변인 동생), 조순임(들불야학 학강)씨. <한겨레> 자료 사진
그러나 시민아파트는 지상 최대 33층, 53개동, 5611가구 규모 아파트를 짓는 광천동 주택재개발 정비사업(42만5984㎡)으로 3개 동 모두가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간 광주지역 시민단체들은 시민아파트가 지닌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해 보존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접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에 들불야학 강학(교사) 출신인 서대석 서구청장은 자문위원회를 꾸려 보존방안을 모색해왔다.
2018년 7월21일 광주 광천동 시민아파트에서 주홍 작가가 시민아파트 원형 보존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얼굴 형상을 ‘탁본’처럼 떠 그리고 있다. 이날 동료 예술인들은 자발적으로 배경 곡을 연주하고, 시민아파트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정대하 기자
광주시와 서구청, 천주교광주교구청, 광천동 재개발조합은 이번 양해각서 체결을 계기로 실무추진협의회를 꾸린다.
실무추진위원회는 광천동 재개발구역 안 나동을 단지 안 ‘역사공원’에 포함해 보존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서구청 쪽은 “99가구가 들어설 시민아파트 나동을 살리는 대신 용적률을 조정하는 방안을 시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광천동 재개발구역 안에 포함된 광천동성당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들불야학이 태동했던 옛 안드레아 교육관을 복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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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 피어오른 ‘임들’의 자리로 철거가 임박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5439.html
들불야학 숨결이 깃든 시민아파트가 보존되기를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9560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