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춘 목포과학대 교수가 1980년 5월27일 아침 네살가량 된 남자아이를 안고 군 버스에 앉아 있다. 이동춘 교수 제공
1980년 5·18항쟁 마지막날 군 버스에 실려 가던 4살가량 남자 어린이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처음 발견됐다. 이 어린이의 행방이 41년째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총을 맞고 사망한 뒤 야산에 암매장된 채 발견됐던 ‘4살 5·18 무명열사’와 동일인물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이동춘(62) 목포과학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9일 “1980년 5월27일 아침 내가 네살가량 남자아이를 안고 군 버스에 붙잡혀 있는 모습을 5·18 영상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국외 방송사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5·18 영상 속에서 대학생이던 이 교수는 군용 버스 안에서 4살가량 남자 어린이를 안고 있었다. 영상에서 빨간색 상의를 입은 아이는 불안한 듯 버스 밖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 5·18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을 보고 그때 만났던 4살 아이가 떠올라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동춘 목포과학대 교수가 2020년 11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4살 무명열사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군 버스 안 4살 아이의 모습은 노먼 소프 전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가 찍은 사진에도 담겨 있다. 노먼 소프 기자 5·18 특별전(5월7일~7월31일 옛 전남도청) 전시장에 걸린 사진들 속에도 군 버스를 탄 4살 아이의 모습이 희미하게 포착됐다. 이 교수는 “5월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잡힌 뒤 버스에 탔는데 외신 기자가 밖에서 동영상으로 찍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앞자리에 앉은 이가 이 교수와 옛 전남도청 본관 2층 부지사실에 있다가 함께 붙잡힌 고 이종기(1917~1997) 변호사다.
이 교수가 이 아이를 만난 것은 5·18항쟁 마지막 새벽이었다.(<한겨레> 2020년 11월30일치 13면) 옛 전남도청에서 총을 들고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저항했던 그는 “도청 앞마당으로 끌려갔는데 먼저 와 있던 남녀 고등학생 2명한테서 네다섯살 정도 남자아이를 건네받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광주의 군부대였던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분류심사를 받으면서 헌병에게 아이를 인계했다고 한다.
노먼 소프 전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가 찍은 사진 속에 이동춘 교수가 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빨간 네모)이 포착됐다. 이동춘 교수 앞에 앉은 이가 이 교수와 함께 붙잡힌 고 이종기 변호사(파란 네모)다. 정대하 기자
군 상무대 영창으로 함께 실려 갔던 4살 아이가 총기 사고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친동생이 5·18 때 상무대 헌병이었던 지인한테 ‘그때 시민군이 안고 왔던 아이를 기억한다. 군 막사에서 보호하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사라져 군에 비상이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며 “나와 함께 군 영창으로 실려 갔던 4살 어린이와 국립5·18민주묘지에 묻혀 있는 4살 무명열사가 일치하는지 5·18진상조사위 차원에서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엔 ‘4살 무명열사’(4-97)가 묻혀 있다. 4살(추정) 무명열사는 1980년 6월7일 광주시 남구 효덕초등학교 건너편 야산(광주대로 바뀐 당시 인성고 앞)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된 뒤 5·18묘지에 묻혔다. 4살 아이 검시 기록엔 ‘좌후 경부 맹관 총상’(왼쪽 뒷목에 탄알이 박힌 채 사망)이 사망 원인으로 돼 있다. 또 ‘사망자를 30대 여성이 군 짚차(군인 지프차)에 싣고 와서 효덕동 소재 인성고등학교 앞산에 매장하고 그 차로 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4살 아이 주검 주변엔 ‘밤색 여자 세타(스웨터)로 싸고 그 속에 한은(한국은행) 1000원권 1매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 주검을 수습했던 광주시청 사회과 전 직원 조성갑(78)씨는 “산등서리(산등성이)에다 묻어놓았더라고요. (주검이) 쬐깐해. 뺏뺏하고. 보실보실한 마사토 땅에 누군가 묻어논 거여”라고 회고했다.
4살 무명열사의 신원이나 가족 등은 아직껏 규명되지 못했다. 5·18 행방불명자 78명 중 10대 미만 희생자 이창현(7)·박광진(5)군 가족들과 4살 무명열사의 유전자는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 광주시는 옛 5·18묘지에 안장된 무명열사 묘 11기를 새 묘역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행방불명자 가족의 유전자를 비교·분석해 2002년 3명, 2006년 3명의 신원을 확인했지만, 4살 남자아이 등 5명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경률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팀장은 “5·18 군 버스에 탔던 4살 어린이의 가족이나 지인이 나타나 진상이 규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대하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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