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군산 토박이 향토연구가 양광희씨
“공동체 해체된 상태여서 하제마을의 600년 된 팽나무에 대해 아는 주민이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몇몇 알고 있는 이들마저도 떠난 지 오래여서 구술받는 데도 한계가 많았습니다. 팽나무를 문화재로 지정받으려면 역사성을 갖춰야 입증해야 한다기에 하제마을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북 군산의 오래된 팽나무를 보살피며 문화재 지정을 위해 뛰는 지킴이가 있다. 주인공은 향토연구가 양광희(52)씨다.
그는 최근 <600년 팽나무를 통해 본 하제마을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은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하제마을의 약 600년 수령 팽나무의 모든 것을 다뤘다. 한국도로공사에서 근무하는 그가 책을 낸 이유가 궁금해 지난 21일 전화로 만났다.
군산 토박이인 그는 생태환경 보전을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지향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지역 내 우수한 생태자원의 모니터링과 그 자원 활용에 대한 대안 제시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제마을 팽나무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9년 10월, 한 시민단체가 진행한 ‘사라져가는 마을을 찾아 떠나는 탐방 프로그램’에 우연히 참석한 게 계기였습니다. 그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팽나무 거목이 눈에 들어왔고,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검은 표지석에 ‘수령 600년의 보호수’라고 써있더군요. 그날 귀가하자마자 바로 관련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군산시는 2004년 이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양씨는 600년이나 마을을 지켜온 팽나무가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역 언론에 투고를 했다. 그러나 문화재 지정은 한두 번의 외침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경관성·역사성·학술성 등을 갖춰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이 팽나무는 크기가 높이 20m·둘레 7.5m다. 부챗살처럼 뻗어가는 잔가지는 멀리서 보면 한폭의 동양화로, 나무의 축이 동남쪽으로 기울어진 모양새다. 과거에는 줄기에 끈을 매달아 그네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경관성은 좋지만, 역사성·학술성에 대한 자료는 너무 빈약했다.
이에 양씨는 2019년 10월 첫 방문 뒤 올 2월까지 15개월 동안 틈만 나면 하제마을을 찾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문헌을 탐구하고 현장조사를 했다. 1년 넘게 뛰어다니던 중 군산시로부터 전라북도지정 문화재(기념물)로 신청한다는 연락이 왔다.
“오는 30일 전북도 지정문화재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심의에 도움을 주고자 책 발간을 서둘렀어요.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3개월 내내 퇴근만하면 탈고 작업에 매달렸죠.”
그는 답사와 연구를 통해 하제마을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었다. 문헌을 통해 하제가 ‘무의인도’라는 섬이었고, 주변 일대가 간척지라는 것도 알게 됐다. 팽나무는 배를 묶어두는 계선주 구실을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8~39년에는 군산지역에 일본 육군의 비행장이 들어섰고, 1940~41년에는 확장공사가 이뤄졌으며(상제·중제 마을 편입), 해방 뒤 1950년대에는 미군이 주둔해 별도로 남북 방향 활주로(하제마을 일부 편입)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2000년대부터 탄약고 안전거리 확보사업의 하나로, 남은 하제마을마저 단계적으로 국방부에서 수용해버렸다. 지금은 마을이 사라지고 토지수용을 거부한 2가구만 남은 상태다.
그는 객관적 근거를 갖추기 위해 지난해 6월 한국임업진흥원을 통해 과학적인 수령 감정도 직접 진행했다. 그 결과, 수령이 537±50년으로 600년이 근접해 전북 지역 최고령으로 추정됐다.
아쉬운 점도 남았다. 마을을 떠난 사람들을 수소문해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에는 한계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분이나마 구술을 해줘 다행이었다. 그는 “군산시민조차도 제대로 모르면서 하제마을 팽나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를 알아달라고 요청하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이제라도 하제마을 이야기를 정리해 알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라져가는 하제마을의 역사와 혼, 문화를 함께 했던 팽나무가 내일도 우리 곁을 지켜주는 천년나무가 되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지키기운동으로 이어져 팽나무가 국가지정 문화재(천연기념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하제마을에서 향토연구가 양광희씨가 자신의 책 주인공인 600년생 보호수 팽나무와 함께했다. 하움출판사 제공
2019년 마을 탐방하다 ‘거목’ 발견
“문화재 지정 필요” 나홀로 조사·연구
옛주민들 구술 채록한 역사서 펴내
‘600년 팽나무를 통해 본 하제마을…’ 오는 30일 ‘전북도 기념물’ 지정 심의
“시민들부터 가치 알아봐 천년나무 되길”
“문화재 지정 필요” 나홀로 조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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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팽나무를 통해 본 하제마을…’ 오는 30일 ‘전북도 기념물’ 지정 심의
“시민들부터 가치 알아봐 천년나무 되길”
하움출판사 제공
2가구만 남은 채 텅 빈 하제마을을 우뚝 지키고 서 있는 600년생 팽나무의 자태. 하움출판사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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