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익산 전북도농업기술원 최선우 연구사 송은주 연구관
“관개수로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 농경지의 가뭄에 대비한 수자원 확보와 다양한 생태계 유지 등을 위해 둠벙(물웅덩이)을 최소한 지금 상태로라도 메우지 말고 보전해야 합니다.”
전북 익산에 위치한 전북도농업기술원의 농업환경과 최선우(51) 연구사와 송은주(52) 연구관이 생물다양성 조사와 농업용수 계획 수립 등을 위한 보고서 <전북 농경지 내 둠벙 현황>을 최근 펴냈다. 전북지역 둠벙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지역·고도·면적·형태별 등으로 정리했다.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둠벙을 조사한 이유가 궁금해 지난 11일 전북도농업기술원에서 이들을 만나봤다.
우선 왜 남도 사투리인 ‘둠벙’을 보고서의 제목에 사용했는지를 먼저 물었다. “표준어보다는 지역적 색채가 나도록 어감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라북도 방언사전’에서 둠벙은 “움푹 파여 물이 괴어 있는 웅덩이로 방죽보다 작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이들은 면적에 제한을 두고 대상을 정해 조사를 시작했다. 대규모 댐은 수자원공사, 저수지는 농어촌공사, 작은 소류지는 각 시·군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 하지만 둠벙은 대부분 개인 소유주가 있고 없는 곳도 있다. 따라서 저수 기능을 통해 농사지을 때 유용한 농경지 안의 둠벙을 대상으로 정했다. 인공위성(GPS)에 기초한 카카오맵을 통해 둠벙의 위치를 연도별로 거듭 확인했다. 1000㎡ 이하를 다뤘는데, 이 중에서 200㎡ 이하 크기의 둠벙이 84.3%를 차지했다. 이렇게 확인한 둠벙은 모두 1287개. 이들 총면적은 15만313㎡로 축구장 18개 규모다. 38곳은 직접 현장조사도 했다. 2019년부터 꼬박 2년이 걸렸다.
“요즘은 농업의 생산활동이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등으로 인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수로나 둠벙의 물도 오염되어 쓸모없는 잡초만 우거져 있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둠벙의 소유주인 농민이 급할 때 자신의 논에 물을 안정적으로 쓰기 위해 풀을 솎아주는 등 주변관리를 하게 되죠. 그래서 둠벙의 생물다양성이 유지되고 환경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해요.”
기후변화로 물 부족과 생물다양성 감소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습지의 일종인 둠벙은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증진할 수 있어 조성·복원·유지를 위한 적극 지원이 필요하지만 분포현황 등 기초자료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람사르협약에서 습지는 홍수 조절, 지하수 보충, 제방 안정화, 수질 정화, 생물다양성 확보, 기후변화 완화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고 인정하고 했다. 이들은 실제 둠벙 현장조사에서 미꾸리와 각시붕어 등 다양한 생물을 관찰했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강조했다. 도시민들은 왜 농민에게만 농민수당을 주느냐고 따질 수가 있으나, 농민은 현장에서 생산만이 아니라 환경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19년 전북도가 농민수당을 지급하기 위해 제정한 조례의 제목도 ‘전라북도 농업농촌 공익적 가치 지원조례’다.
이들은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 역시 둠벙의 필요성과 보전가치를 주장했다고 전했다. 상수도 시설이 보급된 곳에는 우물이 필요 없듯이, 경지정리가 잘된 농경지에는 대부분 둠벙이 사라졌다. 하지만 밭작물은 경지정리가 잘 안된 곳이 더 많다. 이들이 조사한 1287곳 중에서 밭 주변의 둠벙이 697곳(54.2%)으로 절반을 넘는다. “물저장고로 기능하도록 가뭄대비용 둠벙이 사각지대에는 꼭 필요합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들은 행정망을 통해서 조사했으면 기간도 줄이고, 더 체계적·과학적으로 접근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탐문조사를 하다가 뒤늦게 알았는데, 해당 지역마다 농업용으로 쓰도록 작은 저수지 등을 표시한 마을지도가 있었다고 한다. 다른 연구자들이 연구할 때 이를 활용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들은 전형권 과장과 이창규 연구원 등 부서 전체가 수고한 덕분에 첫 보고서를 낼 수 있었다며 “둠벙의 보전관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생물의 종수가 줄어드는 추세에서 코로나 대유행 사태를 맞았습니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할수록 미생물도 다양해지고 천적군도 다양해집니다. 종의 감소로 천적군의 연결고리가 하나씩 끊어지면 불균형으로 인해 생태계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유럽연합(EU)도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해서 생물다양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습지의 하나인 둠벙의 보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전북도농업기술원의 최선우 연구사(왼쪽)와 송은주 연구관. 박임근 기자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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