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18민주화운동 때 고문 피해자와 부상자들이 치료를 받았던 광주시 서구 화정동 옛 국군광주병원 건물. 정대하 기자
국가폭력 생존자와 가족들의 정신적 외상 치유를 담당할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치유센터’ 건립 사업이 첫발을 내딛게 됐다. 국가가 국가폭력 치유의 책임을 개인이나 인권단체 등에 맡기지 않고 사회적 차원에서 직접 치유에 나설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7일 광주시 등의 말을 종합하면, 내년 정부예산에 국가폭력 트라우마치유센터 건립 설계용역비 3억원이 반영됐다. 광주에 2012년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국내 최초 국가폭력 치유기관으로 출발한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치유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국가가 예산을 들여 치유센터 건립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18기념식에 참석해 국립 광주트라우마치유센터 건립을 약속한 바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지난 3일 5·18민주화운동 생존자와 가족들에게 겨울나기 이불을 전달하고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 제공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치유센터는 2023년까지 사업비 70억원이 투입돼 설립된다. 광주에서 건립이 추진되는 이유는 광주트라우마센터가 2012년 이후 8년간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5·18 관련자 등 1만8천여명(누적) 치유경험을 축적했고, 시가 서구 화정동 옛 국군광주병원 옆 공터(2200㎡)를 센터 건립 예정지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9월에는 양향자(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폭력 트라우마치유센터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국가폭력 피해자와 가족의 심리적 고통 치유, 재활과 사회적응 지원, 자치단체와 국가의 지원 등을 담고 있다. 양 의원실 쪽은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에서 근거법이 없다는 이유로 (예산 편성에) 난색해,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뒤 국회 예결위 정책질의를 통해 관련 부서 등을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밝혔다.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는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양향자 의원실 제공
명지원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국립국가폭력 트라우마치유센터는 한국전쟁, 제주4·3,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각종 민주화운동과 관련돼 살해·고문 등 국가폭력을 당한 생존자와 가족들의 치유를 돕는 기관”이라며 “세계고문생존자재활협회(IRCT)에서도 국가예산으로 국가폭력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한국의 정책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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