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마을 기록지 총괄기획자 김호균 시인. 사진 광주 동구청 제공
“마을 곳곳에 스며 있던 삶의 흔적들이 다 사라지고 있어 아쉽더라구요.”
광주광역시 동구청이 낸 마을 기록지 <학동의 시간을 걷다>의 총괄 기획과 취재를 맡은 김호균(58·사진·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 시인은 7일 “어쩔 수 없이 해야할 개발이라면 잊어서는 안될 ‘기억’은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기록지엔 이웃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마을의 역사, 주민들의 삶의 애환 등을 꼼꼼히 담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책 출간엔 학동4구역지역주택재개발조합도 힘을 보탰고, 김 시인과 조광철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이 글을 썼다.
조선시대 홍림리였던 학동은 일제 강점기 때 ‘산’이 ‘’학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풍수에 따라 학강정이란 이름을 얻었다. 학동은 광주읍성의 남문을 지나 화순 너릿재로 가는 길의 경유지에 있다. 책은 ‘시간과 기억’ ‘역사와 장소’ ‘사람과 문화’ ‘풍경과 삶터‘’라는 4개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김 시인은 “역사적 사건 속 학동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사진 등을 통해 총망라했다”고 소개했다.
마을 기록지 <학동의 시간을 걷다> 표지. 사진 광주 동구청 제공
광주 동구청 마을기록지 기획·취재
‘학동의 시간을 걷다’ 공동 집필도
조선시대 뽕밭·일제때 명주실 공장
한국전쟁때 빨치산 ‘중앙포로수용소’
말집·점집·체내림집·배고픈 다리…
“전국 도시마다 삶의 흔적들 지워져”
<학동의 시간을 걷다> 공동집필자 조광철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학동은 “오랫동안 광주천 상류의 한갓진 근교”로, 뽕밭이 많았다. 1920년대 학동 옛 팔거리 맞은편(현 세라믹 아파트)에 명주실을 생산했던 종연방직 제사공장(일본 본사는 ‘가네보’라고 불린 회사)이 들어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시인은 “10대 소녀들의 가혹한 노동의 대가로 일군 가네보는 훗날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의 모태였다”고 말했다. 휴먼시아 2단지 아파트(학2마을)이 생기면서 1930년대 조성됐던 여덟개의 골목길이 있던 팔거리도 사라졌다. 학동 4구역에 있던 ‘광주목장’은 광주 최초로 조선인이 우유를 생산했던 곳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할아버지 현준호 ‘호남은행’ 은행장의 별장과 제각이 있던 곳도 학동이다.
1930년대 광주시 동구 학동에 있던 종연방직 제사공장(가네보). 사진 광주 동구청 제공
광주시 동구 학동 백화마을에 남아 있는 ‘말집’ 주택의 흔적. 사진 광주 동구청 제공
광주시 동구 학동 제4구역 주택재개발 지구 전경. 사진 광주 동구청 제공
학동의 전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일대는 ‘묵은 바탕’이라는 넓은 빈터로, 1910년대 후반부터 운동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김 시인은 “독일의 한 유학생이 야구용품과 축구공을 들여와 경기를 즐겼던 곳이라, 광주 근대 스포츠 발상지 중의 한 곳인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때 묵은 바탕은 지리산 빨치산들을 수감하려고 지은 ‘중앙포로수용소’였다. 1946년 학동 2000㎡의 터엔 백범 김구 선생의 기부금으로 빈민들을 위한 100여 가구의 집이 들어서 ‘백화마을’로 불렸다. 김 시인은 “13~14㎡(4~4.5평)로 협소해 ‘말들이 사는 집’이라는 의미로 ‘말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껏 말집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 8채도 개발로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배고픈 다리’(홍림교)와 구멍뚫린 철판으로 만든 ‘뽕뽕다리’ 등 삶의 애환이 담긴 이야기도 기록했다.
학동 마을 기록지를 만들면서 김 시인은 주민들 90%이상이 떠나버린 학동 4구역 곳곳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가난한 땟굿물이 흐르는 동네”였던 곳엔 병점·신점·묘점·택일·사주·궁합 등을 보던 20여 곳의 점집 간판이 남아 있다. 김 시인은 “체해서 속이 끌끌거렸을 때 찾아가 손가락으로 등과 가슴을 지압을 받았던 ‘체내림집’ 도 이젠 빈집이 된 채였다”고 말했다. ‘학’자가 많이 들어간 ‘학동 떡집’, ‘학동 돌솥밥’, ‘학산 이용원’ 등도 오래된 삶의 흔적들이다. 김 시인은 “빈집 담벼락에 걸린 빈 우유주머니만 바람에 잠깐 움직이더라. 살아 있는 것은 집 화단에 심어진 나무와 꽃들 뿐”이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도시 재개발에 밀려 사라져가는 마을의 흔적을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김 시인의 제언이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세숫대야론(論)’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그는 “작은 마을에 그렇게 많은 시와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학동 뿐 아니라 광주 곳곳에선 재개발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는 광주의 숟한 재개발 현장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흔적도 없이 그렇게 묻혀버릴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동구청은 이 책 속에 언급된 역사적 장소에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주민문화해설사 교육자료와 충장축제 콘텐츠 2차 창작물 제작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