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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된 신품종작물 “플럼코트를 어떡하나요”

등록 2020-10-06 04:59수정 2020-10-06 09:36

농진청, 자두·살구 교배해 4개 품종 개발
지자체 등 수억원식 보조금 주며 재배 독려
“착과율 5~10%…수확 며칠만에 짓물러져”
농민들 출하 포기에 폐농 대책 마련 요구
농진청·지자체 “농민들 선택해” 거리두기
전남 곡성에서 플럼코트 과수 농사를 짓는 류영렬(56)씨는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 싣고 갔다가 물러짐 때문에 출하를 거부당한 과일 7.5t을 나주 지인 과수원에 버렸다. 류영렬씨 제공
전남 곡성에서 플럼코트 과수 농사를 짓는 류영렬(56)씨는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 싣고 갔다가 물러짐 때문에 출하를 거부당한 과일 7.5t을 나주 지인 과수원에 버렸다. 류영렬씨 제공
“고생만 죽도록 하고, 손해만 봤지요. 플럼코트 농사를 지어 1년에 20만~30만원 손에 쥐었으니까요.”

지난달 24일 전남 나주 노안면 플럼코트 농원을 둘러보던 농민 손영순(60)씨는 “유통기간이 짧아 공판장 경매사들이 ‘요것이 과일이요?’라며 발로 차버릴 정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플럼코트는 자두의 새콤함과 살구의 달콤한 향기를 동시에 맛볼 수 있도록 육종한 신품종 과일이다. 농촌진흥청(농진청)은 2007년부터 국내 여건에 맞도록 하모니·티파니·심포니·샤이니 등 4개 품종을 순차적으로 개발했다. 맛이 좋고, 꽃가루 수정 석달 만인 6월 하순 생산이 가능하다.

농촌진흥청이 지역특화작목으로 개발한 플럼코트 4개 품종. 농촌진흥청 누리집 갈무리
농촌진흥청이 지역특화작목으로 개발한 플럼코트 4개 품종. 농촌진흥청 누리집 갈무리
농진청은 “차세대 과일 소비를 이끌 과종”이라며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전남 나주시는 플럼코트 재배농가에 2011~16년 9억1000만원, 순천시는 2016~2018년 2억400만원을 보조금(자부담 30%)으로 지급했다. 플럼코트 재배 면적은 2007년 10㏊로 시작해 2012년부터 20㏊로 늘었고, 지난해엔 전남·전북·경북·경남 등 7개 시·도에 133.1㏊(459농가)까지 빠르게 불어났다. 전남 재배면적이 88.6㏊(66.6%)로 가장 넓다.

하지만 플럼코트의 착과율(과실나무에 과일이 열리는 비율)이 5~10%대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나주 농민 ㄱ씨는 “플럼코트는 꽃가루가 없어 다른 수분수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전엔 중국산 꽃가루까지 수입해 나무 한그루 한그루에 정성스럽게 몇번을 반복해 발라주기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수확한 플럼코트마저 2~3일 만에 물러짐 현상이 나타나 판로도 찾기 힘든 실정이다. 나주시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엔 지난해 플럼코트 32t이 들어왔지만 21.2t(66.3%)만 상품화됐다. 더욱이 플럼코트는 새 품종이어서 농업재해보험 피해 보상 대상도 아니다.

2014년부터 플럼코트 재배에 나섰던 류영렬(왼쪽)씨가 지난달 24일 나주 노안면 손영순(60)씨의 플럼코트 과수원을 찾아가 피해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대하 기자
2014년부터 플럼코트 재배에 나섰던 류영렬(왼쪽)씨가 지난달 24일 나주 노안면 손영순(60)씨의 플럼코트 과수원을 찾아가 피해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대하 기자

플럼코트가 애물단지가 된 것은 농진청의 성급한 성과주의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부터 전남 곡성 1만4876㎡(4500평)의 땅에 플럼코트 나무를 심었던 류영렬(56)씨는 올해는 아예 출하를 포기했다. 류씨는 “지난해 나주 농산물산지유통센터에 싣고 갔더니 과일이 물러졌다는 이유 등으로 출하량 절반인 7.5t을 받아주지 않아 길에다가 버렸다. 수확한 과일을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플럼코트를 보급하기 전에 시험 재배를 통해 충분히 검증하지도 않고 성급하게 보급한 것이 문제였다. 90% 이상이 폐농에 공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과 자치단체들은 농가 책임이라며 선을 긋는다.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과수과 쪽은 “농진청이 플럼코트를 농가에 직접 보급한 적은 없고, 새로운 품종이고 소득작목이라는 장점이 부각돼 지자체와 농가 중심으로 선택 재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주시농업기술원 쪽은 “시에선 희망 농가가 있어 시범사업으로 선택해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고, 농가에서 스스로 선택했다. 다만, 재배농가 50% 정도는 ‘다시 한번 대책을 세워 해보자’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 나주와 곡성, 순천 지역 플럼코트 농가에서 플럼코트 나무를 베어내고 폐농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정대하 기자
전남 나주와 곡성, 순천 지역 플럼코트 농가에서 플럼코트 나무를 베어내고 폐농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정대하 기자
애물단지가 된 플럼코트 해결 방안을 두고서도 농가와 행정기관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전국플럼코트연합회 회원들은 지난달 18일 전북 전주에 있는 농진청을 찾아가 “농진청이 개발한 신품종을 믿고 재배했는데, 상품화할 수가 없다. 차라리 플럼코트 과수원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 ‘폐농’할 수 있도록 지원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나주 농민 ㄴ씨는 “플럼코트는 재배하면 할수록 손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농진청은 “전국 플럼코트 재배 농가 459곳 중 15% 정도인 70여농가만 올해 저온·서리 현상으로 착과 불량 등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플럼코트는 소득작물로 유망하다”는 입장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보급 초기에 문제가 있었지만, 살구나무를 수분수로 심어 착과가 잘 된 농가들도 있다. 물러짐 문제는 수확 시기를 앞당기면 해결될 수 있다. 폐농 문제는 농진청 소관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쪽은 “과수 시설 현대화 예산을 지자체에 지원했지만, 특정 품종 과일을 지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나주시농업기술원 쪽은 “플럼코트 과수원에 추가로 하우스나 서리방지용 ‘방상팬’를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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