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별을 따라가다 별이 된 사람>을 낸 김희용 목사.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남동 ‘넘치는 교회’ 김희용(60) 목사는 예배당에 교인들은 20명 안팎이지만 일복이 넘치는 목회자다. 2003년 광주로 온 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세월호 광주시민상주모임’에 참여해 시대의 아픔에 분노하며 함께 싸워왔다. 그의 첫 시집 <별을 따라가다 별이 된 사람>(전라도닷컴 냄)에 실린 87편 중 상당수는 4·16참사와 5·18민주화운동을 함께 보듬고 속울음을 울며 쓴 작품들이다. “한 줄기 흐릿한 빛으로만 다가오지만 그 미미한 빛에서 강한 희망을 바라보며 긍정으로 삶을 살아내고픈 의지적인 고백이 돋보인다.”(강기원 목사)
전남 해남 출생인 그는 한신대를 졸업한 뒤 농촌으로 갔다. 민주화·인권운동을 하다 수감되기도 했던 아버지 고 김경식 목사의 뒤를 이어 해남·무안에서 목회를 했다. 김 목사는 1989년 기독교장로회(기장) 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 결성에도 적극 참여했다. 1990년 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 여름대회 땐 채일손 목사가 쓴 곡에 가사를 붙인 ‘농민선교가’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농민선교가엔 생태환경을 탐욕의 대상으로만 삼는 현실과 민족분단의 아픔을 극복하자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김희용 목사의 첫 시집 <별을 따라가다 별이 된 사람> 표지.
그는 담백하고 뚜벅뚜벅 걷는 목회자다. 2018년 10월부터 6개월동안 택시운전사로 일했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시민활동을 했지만,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성직자라고 하는 ‘구별된’ 사고방식을 떨치고 싶었다. 저를 둘러싼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목회자이자 시민운동가로 살고 있는 그는 항상 스스로에게 “숨결은 겸손한지, 말투는 거만하지 않는지, 눈은 지금도 촉촉한지”(‘진보여 맑은가’ 중)를 묻곤한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로 활동하던 2010년 김희용 목사가 광주 미쓰비시자동차 판매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교인들에게 헌금을 내라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그는 평일엔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한다. 일주일 중 나흘동안 오전 시간엔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가사와 사회 활동을 돕고 있다. 중2 때부터 교과서보다 시와 소설을 더 즐겨 읽었던 김 목사는 “이번 시집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골랐지만, 다음번엔 이 시대 종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설파한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전라도닷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