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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희곡’ 등 고려인 기록물 23권, 국가지정기록물 등재

등록 2020-01-20 16:09수정 2020-01-20 16:24

한진·김해운·김기철 등 고려인 작가 육필원고
고려극장 사진첩과 창가 수집 필사본도 등재
“정부, 고려인 기록물 역사적 가치 첫 인정”
광주고려인마을 고려인역사문화전시관 전시
한진의 중편소설 <공포>(1989년)는 고려인 강제이주 참상을 최초로 고발한 작품이다.
한진의 중편소설 <공포>(1989년)는 고려인 강제이주 참상을 최초로 고발한 작품이다.

“바이깔 호반의 급한 산비탈인가…소나무들이 드문드문 꽂혀 있다. 수평선인가 지평선인가…”

고려인 2세 한글문학가 한진(1965∼1989)이 쓴 희곡 <공포>의 첫머리는 글이 정갈하다. 중편소설 <공포>(1989년)는 고려인 강제이주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최초의 고발작품이다. 한진의 본명은 한대용이다. 북한 국비 유학생으로 소련 전연맹국립영화대학 시나리오과를 다녔던 그는 북한 유학생들과 집단 망명해 무국적자의 길을 선택했다.

고려인 2세 한글문학가 한진(맨 왼쪽).
고려인 2세 한글문학가 한진(맨 왼쪽).

고려인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옛 소련국가에서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를 말한다. 고려인들은 1937년 9월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여러 나라로 흩어졌지만,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보존하며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이뤘다. 1964~1993년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서 활동했던 그는 고려극장의 연기 수준을 한 단계 드높인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희곡 <산부처>(1979년)는 소련 문화계의 큰 주목을 받아 두 차례나 모스크바 초청 공연도 성사된 작품이다.

한진의 희곡 &lt;폭발&gt;(1985년)은 고려인이 생산한 모든 장르의 문학작품 중 5·18을 다룬 유일한 작품이다.
한진의 희곡 <폭발>(1985년)은 고려인이 생산한 모든 장르의 문학작품 중 5·18을 다룬 유일한 작품이다.

한진의 희곡 8편과 소설 1편이 육필원고로 남아 있다. 이 가운데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희곡 <폭발>(1985년)이라는 작품도 있다. 고려인이 생산한 모든 장르의 문학작품 중 5·18을 다룬 유일한 작품이다. 고려인 연구자 김병학 시인은 “남북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소재로 1980년대 초반의 미군 기지촌과 5·18 등의 문제를 다룬 희곡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고려인 기록물 소장자 김병학 시인은 “고려인 기록물들이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등재됐다”고 20일 밝혔다. 등재 기록물은 고려인 작가와 문화예술인들이 남긴 소설·희곡·가요 필사본 등 육필원고 21권과 고려극장 80여년 역사가 담긴 사진첩 2권 등 23권이다. 김병학 시인은 “국가기록원이 정부 차원에서 고려인 기록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 첫 사례다. 고려인 기록이 우리 역사를 더 깊이 있게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쉬켄트 조선극장 전명진이 필사한 &lt;개타령&gt; 악보.
타쉬켄트 조선극장 전명진이 필사한 <개타령> 악보.

고려인 1세대 작가 김해운(1935~1957)은 배우이자 극작가였다. 1932~1959년 블라디보스토크와 타쉬켄트와 사할린이라는 각기 다른 장소의 고려극장에서 일했던 그의 희곡 8편이 등재됐다. 이 가운데 희곡 <동북선>(1935년)은 항일노동운동을 다룬 작품이다. 강제이주 이후 집단농장 생활상을 밀도 있게 보여준 희곡 작품도 남겼다.

고려인 1세대 작가 김해운(1935~1957)의 &lt;동북선&gt;(1935년)의 육필원고.
고려인 1세대 작가 김해운(1935~1957)의 <동북선>(1935년)의 육필원고.

고려인 1세대 작가 김기철(1960~1982)도 소설 원고 2권을 남겼다. 김기철은 고려인 1세대 한글문학 작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체를 구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을 통해 고려인 생활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고려인 구전가요가 기록된 가요 필사본 2권도 등재 목록에 들어 있다. 한권은 리 알렉산드르라가 타쉬켄트 조선극장 전명진 여배우의 부탁을 받아 1944~1945년 8개월 동안 171곡을 모아 필사한 것이다. 또 한권은 전명진이 1945년에 50여곡의 악보까지 그려서 필사한 것이라고 한다.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주연 여배우들.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주연 여배우들.

고려극장 사진첩 2권엔 260여장의 자료 사진들이 들어 있다. 1932년 고려극장 창단 이후부터 2000년 무렵까지 고려극장이 무대에 올린 각종 연극과 배우들의 활동상황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고려극장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설립돼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으로 명맥이 이어지는 세계 최초의 우리말 전문 연극 극장이다.

고려인 연구자이자 고려인 기록물 소장자인 김병학 시인.
고려인 연구자이자 고려인 기록물 소장자인 김병학 시인.

제13호 등재 기록물들은 올해 문을 여는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에 전시된다. 1992년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민간 한글학교 교사, <고려일보> 기자,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으로 2016년까지 일하며 고려인 자료 1만여점을 모았다. 김병학 시인은 “고려인 관련 유물을 광주고려인마을과 공동 소유하는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기증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가지정기록물은 민간기록물 중 국가적으로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주요 기록물이다. 국가지정기록물 1호는 유진오 선생의 제헌헌법 초고이며,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까지 모두 13건이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김병학 시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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