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입수 22초 동영상 보니 환자처럼 걷는 ‘익살스런’ 장면과 식당 모임서 건강한 모습 등 담겨 5억 조세포탈…건강 이유 재판 미뤄 법원 “주소지 바뀌어…공소장 재송달”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470억원대의 국세와 공기업 채무를 체납하고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오클랜드 교민 제공
하루 5억원꼴로 벌금을 탕감받는 구치소 노역으로 공분을 샀던 허재호(78) 전 대주그룹 회장이 재판에 출석할 때 환자처럼 보이려고 표정 연습을 하는 듯한 장면이 포착됐다. 건강상 이유를 들어 재판에 불출석했던 허 전 회장이 ‘꾀병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한겨레>가 입수한 22초짜리 동영상을 보면, 허 전 회장이 영락없이 환자처럼 보이며 걷는 장면이 담겨 있다. 지난 12월 중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영상 속의 허 전 회장은 왼쪽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어깨에 힘을 빼고 걷는다. 그러다가 누군가 “이것 한번 해주세요. 그거요”라고 요청하자, 허 전 회장은 양팔을 ㄴ자로 만든 뒤 “워~” 하고 소리치며 활짝 웃는다. 뉴질랜드 한 교민은 “재판이 연기돼 환호하던 허 전 회장이 앞으로 재판에 나가면 환자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하듯 표정을 연습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다른 동영상 속 허 전 회장은 한 식당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허 전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를 대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 허 전 회장은 지인 3명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대한화재해상보험㈜ 차명주식을 판 뒤 발생한 양도소득세 5억136만원을 내지 않는 혐의(조세포탈)로 지난해 7월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송각엽)는 8월 첫 재판을 앞두고 건강상의 이유로 공판기일을 연기해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였다. 10월에 열린 첫 공판은 허 전 회장 불출석 상태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허 전 회장 봐주기 재판’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허씨에게 변호인을 통해 수차례 소환 조사를 통보했는데도 불응했다. 범죄인 인도 절차를 준비 중이다. ‘구속영장을 발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광주지법은 “피고인의 주소지가 바뀌어 공소장이 제대로 송달되지 않아 공소장을 재송달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6월17일 두번째 공판기일 이후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허 전 회장은 “심장병 수술을 세차례나 받았고, 의사 진단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지금도 날씨가 차면 혈압이 올라갈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종부세 등 56억원을 체납한 사실이 드러나 국세청의 고액·상습 체납자 공개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그는 400억원대의 세금·벌금을 내지 않은 채 카지노에서 도박한 사실이 드러난 뒤 2014년 3월 귀국해 “벌금을 낼 돈이 없다”며 하루 5억원씩을 탕감받는 구치소 노역을 했다가 ‘황제노역’ 논란을 불렀다.
정대하 김용희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