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한 주민이 학살된 주검 앞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전남도는 여순사건의 민간인 희생자를 1만1131명으로 추산한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자백한 그는 운동장 저쪽 구덩이 속에서 총살되었다. 성명도 죄명도 누가 심문하고 누가 집행했는지도 기록되지 않고 그렇게 사라졌다.”
역사학자인 주철희 박사는 17일 논문 ‘여순항쟁과 군법회의 실체’에서 1948년 10월24~30일 전남 여수와 순천을 취재했던 미국 잡지 <라이프> 사진기자 칼 마이댄스의 기록을 소개했다. 그는 이날 순천대 여순연구소와 제주4·3도민연대가 마련한 학술토론회에서 부당하게 행사된 국가권력의 사례를 열거하며 민간인 희생자의 재심에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주 박사는 “대법원 재심 결정 때 대법관 3명이 여순사건의 민간인 희생자들이 ‘사법 작용을 가장한 국가의 무법적 집단학살’로 숨졌다는 의견을 내놨다”며 토론을 이끌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는 ‘제주·여순 항쟁의 민족사적 재조명과 국가폭력의 재인식’, 정명중 전남대 교수는 ‘국가체제와 증오체제’라는 주제로 각각 강연했다.
여순사건 71돌을 맞아 여수와 순천, 서울 등에서 다채로운 추념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여수시는 19일 오전 11시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광장에서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을 연다. 추념식에 맞춰 1분 동안 여수 전역에는 묵념 사이렌이 울릴 예정이다. 여수시는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받아 16개 민방위 경보 시설에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평탄음 사이렌을 내보낸다. 이날 추념식에는 여순사건 유족, 진보·보수단체 회원 등 5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순신광장에서는 이날 오전 10시 기독교·원불교·불교·천주교의 추모행사가 열리고, 오후 7시에는 ‘화해와 평화의 바람’이라는 주제로 문화예술제를 펼친다.
전남도와 여순항쟁유족연합회는 이날 오후 2시 순천시 장대공원 야외무대에서 여순항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추념식을 거행한다. 추념식은 위령제와 추모식, 발원제 차례로 이어진다. 이날 행사에는 김영록 전남지사, 여순항쟁 유족회원, 제주4·3 유족회원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장대공원은 당시 여수에서 열차로 순천에 입성한 14연대 군인들과 진압 경찰 사이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장소다.
여순 71주년 행사추진위원회와 한국민족춤협회는 21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다시 동백으로 살아나’라는 이름의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울추모문화제를 연다. 국회에는 정인화·이용주·윤소하 의원 등이 각각 발의한 특별법안 5건이 제출돼 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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