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유족들이 제주4·3평화공원 안의 위패봉안실을 둘러보고 있다. 허호준 기자
제주4·3평화재단 이사와 이사장에 대한 임명권을 제주도지사가 갖겠다고 나서자,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4·3을 정치화하려 한다”고 반발하며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4·3관련 인사들도 “제주도가 4·3재단 이사진 구성에 인사권을 휘두르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일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 등의 말을 종합하면, 고 이사장은 지난 10월31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직을 사퇴하며’라는 제목의 사퇴 의향서를 도청 담당 부서에 보냈다.
발단은 제주도가 4·3평화재단 이사진에 대한 임명권을 도지사가 행사하도록 한 ‘재단법인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개정을 추진하면서부터다.
이에 고 이사장은 지난 10월30일 오영훈 제주지사와 면담을 통해 4·3재단의 책무 등을 강조했지만, 양쪽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제주도가 조례 개정안을 밀어붙이자 하루 만에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다.
재단은 재단이사회가 전국 공모와 임원추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이사와 이사장을 선임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는 최근 사실상 ‘재단 무용론’을 내놓아 4·3관련 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산 지방공기업평가원의 컨설팅 결과 등을 명분으로 이사와 이사장에 대한 임명권을 도지사가 행사하도록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현행 비상근 이사장제를 상근 이사장제로 바꿔 책임 운영을 하는 방안도 담았다.
이에 대해 고 이사장은 “재단은 4·3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기관이다. 4·3의 해결은 국가의 책무이며, 국가적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어야 한다”며 “재단의 운영 지원을 이유로 이사장과 이사의 임명권을 도지사가 가지려는 시도는 4·3의 정의롭고 완전해 해결의 방향을 되돌리는 시도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사와 이사장의 임명권을 도지사가 행사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면 4·3의 정치화를 부르고, 정쟁의 대상이 될 것”고 지적했다.
제주지역에서는 제주도 산하 출자출연기관들에 도지사의 선거를 도운 인물들이 들어간 것과는 달리, 4·3재단은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오랜 4·3 경험을 갖거나 지역사회의 원로가 이사장을 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4·3 단체 관계자는 “4·3재단은 민주화운동 이후 제주도민들과 전국 양심세력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지난 도정도 4·3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인식하고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며 “제주도가 일방적으로 조례 개정을 추진하면 반발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4·3평화재단은 ‘제주도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정부와 제주도가 150억원씩 낸 출연기관이다. 4·3평화재단은 비상근 기관장으로 자체적으로 정관에 따라 전국 공모를 통해 이사진을 구성하고, 이사장을 선출해왔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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