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관이 5월16일 전남 해남군의 한 야산에서 신원 미상 유골을 살펴보고 있다. 5·18조사위 제공
활동 기간이 100일도 남지 않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의 조사활동보고서에 집단발포 부대명, 희생자 이름 등 10여건이 잘못 기재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조사 부실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커지고 있다.
21일 5·18조사위가 누리집에 올린 올해 상반기 조사활동보고서를 보면, 오류가 10건 넘게 발견된다. 계엄군의 발포 경위와 관련한 대목에선 ‘(1980년) 5월20일 광주역 인근 및 광주시청 등지에서 발생한 총격 사실을 확정하기 위해 11공수여단과 관련 부대 장병, 당시 피해자와 참고인에 대한 진술 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지만, 1980년 5월20일 당시 광주역 앞 집단발포는 3공수여단이 했다.
전남대 교정 안 연행자에게 가해진 가혹행위와 사망 사건 조사 부분에선 ‘5월21일 오후 8시 이후 광주시내 일원에서 가장 치열하게 시위가 전개됐다’고 적었다. 하지만 군 기록인 ‘3공수여단 전투상보’ 등을 보면 전남도청 등 시내에 주둔하고 있던 공수여단은 5월21일 오후 6시 이전에 시 외곽으로 철수를 완료한 것으로 나온다.
5·18의 대표적인 학생 희생자인 박금희(당시 춘태여상 3년)양의 이름을 잘못 적은 사실도 확인됐다. 조사위는 ‘계엄군의 집단 학살’ 부문에서 ‘김금희, 장재철 외 구급차 의료봉사원 2명의 사망 또는 실종 여부 등을 비롯해 (…) 민간인 살해, 지휘 책임에 대한 진상규명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썼다.
보고서에 나온 행방불명자 규모도 사안마다 다르다. ‘행방불명자의 규모 및 소재’ 부문(81쪽)에서는 ‘행방불명 인정자 84명 중 소재가 확인된 8명을 제외한 76명’이라고 했지만 ‘가(암)매장의 소재 및 유해의 발굴과 수습에 대한 사항’ 부문(95쪽)에서는 ‘행방불명자 인정 84명 중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72명’이라고 적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틀렸다는 것은 조사관들이 5·18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사위 내부에서는 이번 보고서가 사실상 마지막 조사활동보고서라는 점을 들어 종합보고서를 정해진 기간 내에 작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5·18조사위는 5·18진상규명법에 따라 매년 두차례 대통령과 국회에 조사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조사위는 12월26일까지 조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6월 종합보고서를 내야 한다. 조사위 관계자는 “올해 말이 활동 시한인 점을 고려하면 다음달까지는 종합보고서 초안이 나와야 남은 두달간 추가 조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언 5·18조사위 대외협력담당관은 “진실을 기다리는 광주시민 염원을 저버리고 신중하게 활동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하다”며 “검증을 좀 더 신중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