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여의도공원과 국회 사이에서 열린 ‘교권보호 4법’ 처리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검은 옷을 입고 묵념하며 교권 침해 등으로 세상을 등진 교사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지난 1일 전북 군산 해상에서 숨진 채 발견된 초등학교 ㄱ교사의 유서가 공개됐다.
18일 유족이 공개한 ㄱ교사의 유서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은 메모 형태로, 지난 8월30일과 31일에 작성된 것이다. 31일 유서에는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너무 안 돼서 힘들다. 모든 미래, 할 업무들이 다 두렵게 느껴진다. 일을 쉴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깨지면 더 무너질지도”, “개학하고 관리자 마주치며 더 심해진 것 같다. 늘 뭔가 태클을 걸고 쉬이 안 넘어가며 극피(P)”라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피(P)는 ‘MBTI(성격유형검사)’의 한 갈래로 즉흥적인 성향을 뜻한다. 평소 계획적인 성격의 자신과 마찰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ㄱ교사는 또 “업무 능력, 인지 능력만 좀 올라왔으면 좋겠다, 나 잘했었는데. 군산 1등, 토익 고득점”, “자존감이 0이 되어서 사람들과 대화도 잘 못하겠다”라고 토로했다.
30일 유서에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미친 충동 일어나다가, 갑자기 1시부터인가 안정되었다. 왜 이러지. 그런데 또 업무 폭풍 오면 또 그렇게 될 것 같기도 하고”라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유서에는 업무 과다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ㄱ교사의 유족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작은 학교의 교사는 교육활동 이외에 다른 업무를 많이 맡는다.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바란다”며 유서 공개의 이유를 밝혔다. 유족은 또 “평소 고인이 업무 스트레스를 언급하면서, 업무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힘들어했다. 억울함 없이 조사에서 다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학년 담임을 맡았던 ㄱ교사는 방과 후, 돌봄, 현장체험학습 뿐만 아니라 학교 축제 등 비공식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교사노조는 ㄱ교사의 사인을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보고 순직 인정을 촉구했다. 정재석 전북교사노조 위원장은 “고인은 해당학교의 특정 교원과도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노조는 갑질 의혹 및 업무와 관련한 진상규명을 위해 전북교육청에 감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ㄱ교사는 지난 1일 오전 군산지역 한 교량 인근 해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해경은 비상등을 켠 채 다리에 주차된 그의 승용차 안에서 메모 형태의 유서를 수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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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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