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축제가 열린 지난 8일 전북 군산 우체통거리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박임근 기자
‘너를 늘 사랑하고 응원해. 힘내자 우리 딸’, ‘건강 챙기게. 밥 좀 꼭꼭 챙겨 먹어’.
지난 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우체통거리에서는 제6회 손편지축제가 열렸다. 빨간 우체통이 있는 거리의 가로등에 ‘응원 엽서’가 걸려 있었다. 축제를 앞두고 군산시가 응원 엽서 쓰기 공모를 진행했는데 응모작 2천편 중에서 40여편을 선정해 전시한 것이다.
이날 거리에서는 비누 거품을 이용한 매직 버블쇼와 풍선쇼, 캐리커처 그리기, 어린이합창단 공연 등이 펼쳐졌다. 가족과 함께 온 초등학교 5학년 장서엘양은 “1년 뒤에 내가 다시 받아 볼 ‘느린 엽서’를 썼는데, 그때가 되면 내가 어떻게 잘 살고 있을지가 궁금하다”며 활짝 웃었다.
우체통거리에 있는 한 찻집의 직원 김여진(53)씨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우체통거리에 활기가 넘쳐 좋다. 주말마다 손편지축제와 같은 행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6회 손편지축제가 열린 지난 8일 군산 우체통거리에 ‘느린 엽서 체험’ 등 각종 이벤트를 알리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박임근 기자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사랑의 우체부’도 눈길을 끌었다. 1960~70년대 자전거를 타고 편지를 배달했던 우체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자전거를 탄 우체부는 축제에 온 사람들에게 장미 한송이씩을 직접 선물했다. 사랑의 우체부 역할을 한 대학생 전권희(19)씨는 “시민들과 함께 추억여행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군산 우체통거리 가로등에 축제를 앞두고 개최한 응원 엽서 쓰기에서 선정된 작품이 내걸려 있다. 박임근 기자
군산 우체통거리는 군산우체국 주변 남북 및 동서 방향 각 200m가량을 말한다. 이 거리는 1980년대 이전까지는 군산 시민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이용될 정도로 번화가였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도심 개발로 인한 공동화로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역 상인들은 힘을 합쳤다. 2016년 폐우체통 30여개를 모아서 손질하고 거기에 그림을 그려 상가 앞에 세웠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300만원을 모았다. 평범했던 거리가 ‘우체통거리’라는 도로명 주소도 얻었다. 2017년 주민들은 ‘군산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를 꾸리고 2018년에 제1회 손편지축제를 열었다.
우체통거리는 우리 동네 살리기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2017년만 해도 이 일대 상가 공실률이 약 75%였으나 거리에 활력이 생기면서 지난해에는 공실률이 5%가량으로 줄었다. ‘2020년 국토교통부 선정 도시재생 우수사례 최우수상’을 받았다. 올해에는 우체통거리 손편지축제가 ‘전북 지역특화형 대표축제’로 선정돼 주민 주도형 도시재생 대표 거리로 평가받는다.
신상철 군산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 부회장은 “주민들과 매주 수요일 오후 3시에 모여 회의를 하고, 회의 내용도 카톡방으로 공유하고 있다”며 “공모사업에 전문업체들이 사업비를 따서 접근하는 방식보다 주민들이 협력해 직접 참여하는 우리의 방식이 입소문이 나면서 각 시군과 단체에서 벤치마킹을 많이 온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제6회 손편지축제에서 전주교대 군산부설초등학교 어린이합창단이 노래와 율동을 하고 있다. 박임근 기자
디지털 시대에 손편지라는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게 하는 우체통거리를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배학서 군산우체통거리 경관협정운영회 회장은 “군산 우체통거리는 365일 손편지 쓰기 등 무료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방문객들이 편지를 쓰며 편안함과 행복감을 얻고 가는 것이 우체통거리 지속가능성의 근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군산시는 내년에 손편지축제를 6~8월에 세차례 나눠서 진행할 계획이다. 우정사업본부와 협의해 소규모 전시관을 운영하는 등 다른 사업도 모색하고 있다.
군산 우체통거리에는 각각 다른 그림이 그려진 폐우체통이 세워져 있다. 박임근 기자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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