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전남 나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쿠스노키 비요키치 상등병이 남긴 종군일지.나주시 제공
일본 지식인들이 129년 전 동학농민군을 학살한 선조를 대신해 전남 나주에 사죄비 건립을 추진한다.
나주시는 11일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가 10일 나주시민회관에서 주민설명회를 열어 사죄비 건립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사죄비 건립추진위는 이번 설명회를 통해 사죄비 건립의 역사적 배경과 경위, 건립 터 등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밝혔다.
사죄비 건립 장소는 일제강점기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인 옛 나주역 인근과 처형지가 있었던 나주초등학교 근처가 거론되고 있다. 추진위원들은 동학농민혁명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모두 항일봉기라는 점에서 옛 나주역 자리가 적절하다는 의견과 처형장소에 새워야 한다는 의견을 놓고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립 시기는 나주 시민의 날인 10월30일이 꼽힌다.
나주시와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한일동학기행단은 2019년 나주동학농민혁명 한일학술대회를 열어 사죄비 건립을 추진해 왔다. 이들은 원래 ‘위령비’를 추진했으나 일본군의 학살에 대한 사죄 의미를 담자는 의견에 따라 ‘사죄비’로 변경했다. 사죄비에는 양국 언어로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의 전원살육작전으로 처절하게 희생됐다. 과거의 깊은 상처를 간직한 나주를 미래의 상생, 평화의 나주로 만들고자 한일 두 나라의 양심있는 지식인과 뜻있는 한일동학기행 참가자들이 나섰다’는 내용이 새겨질 예정이다.
추진위에는 한일동학기행 한국 대표이자 동학연구자인 박맹수(68) 전 원광대 총장과 나카츠카 아키라(95) 일본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와 이노우에 카츠오(80)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나주학회, 한일동학기행단 참가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2006년부터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의 제안으로 출범한 한일동학기행은 지난해까지 모두 17차례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상호 답사와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나주는 동학농민혁명 때 나주성에 입성한 일본군에 의해 동학농민군이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희생된 지역이다. 동학혁명 당시 일본군 쿠스노키 비요키치 상등병이 남긴 ‘진중일지’를 보면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는 1895년 1월5일부터 2월8일까지 호남초토영(현재 나주초 자리)에 주둔하며 각지에서 압송돼온 농민군 지도자 783명 이상을 처형한 것으로 나온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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