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식민사학’ 의혹을 제기한 <전라도 천년사> 4권 표지.<전라도 천년사> 누리집 갈무리
호남 역사학계가 최근 식민사관 논란이 불거진 <전라도 천년사>(천년사)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전북대, 전남대, 조선대, 목포대 등 광주·전남·전북 18개 대학·역사단체는 12일 “일부 시민단체가 학술적 비판 없이 ‘천년사’를 ‘식민주의 역사서’로 규정하고 매도하면서 일부 지역 정치인과 종교계, 언론이 비난 대열에 합류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역사연구 결과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열려 있지만 최근 시민단체는 ‘식민사학’, ‘친일매국노’라는 자극적인 구호를 남발하며 비난과 선동, 압박 등의 방식으로 <천년사> 편찬 주체와 집필진에게 가공할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이는 정상적인 학술활동과는 거리가 먼 극히 반지성적인 폭력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시민사회는 이에 현혹되지 말고 열린 눈으로 건전한 비판의 대열에 합류해 주길 바란다”며 “<천년사> 편찬 주체인 호남권 3개 지자체도 위압에 휘둘리지 말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천년사’>완간을 선언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천년사>는 고려 현종 9년(1018년) 때 ‘전라도’라는 이름이 지어진지 1000년이 된 것을 기념해 201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5년간 광주시, 전남도, 전북도가 24억원을 들여 편찬한 책이다. 원래 1018년부터 2018년까지 1000년 역사를 기록하려고 했으나 현종 이전의 역사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5000년으로 범위를 넓혀 집필진 213명이 전체 34권 규모로 만들었다. 각 지자체는 지난해 12월21일 봉정식을 열어 책을 공개하려고 했으나 시민단체가 ‘식민사학’ 의혹을 제기하며 잠정 취소했다.
‘전라도오천년사바로잡기 전라도민연대’(연대) 등은 “천년사 편찬위는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쓰인 <일본서기>를 인용해 전북 남원의 옛 지명을 ‘기문’, 장수·고령을 ‘반파’, 강진·해남을 ‘침미다례’, 구례·순천을 ‘사타’라는 지명으로 기술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편찬위는 지난달 10일 누리집에 “시민단체가 구체적인 내용 확인도 없이 단지 <일본서기>에 기록된 지명을 사용하고 일부 일본학자의 견해를 소개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관’으로 매도해 안타깝다”며 “역사기록이 크게 부족한 우리 고대사를 복원하기 위해서 철저한 비판과 분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는 역사연구방법을 선택했다”고 반박했다. 편찬위는 4월24일부터 지난달 7일까지 1차에 이어 지난달 10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2차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의견 수렴이 끝나는 7월 공개 학술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천년사> 4권(선사·고대3)을 보면 백제 근초고왕의 북벌 부분에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이 내용이 나오지 않아 <일본서기>를 참고했다고 나온다. ‘일본이 남만 침미다례를 정복해 백제에 하사하며 근초고왕이 북벌에 나설 수 있었다’는 내용으로, 집필진은 의심가는 대목이 많아 일본이 아닌 백제가 한반도 남쪽 세력을 정복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서기>에 나온 기문, 사타, 반파, 모루 등 ‘임나일본부’ 소속 지역에 대해서도 거리상 왜의 통치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