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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5·18을 재연하니 학생들이 더 몰입하죠”

등록 2023-05-24 18:01수정 2023-05-24 19:22

[짬] 광주 산정중 이동철 교사

5년째 중학생 5·18 연극 올린 광주 산정중 이동철 교사. 정대하 기자
5년째 중학생 5·18 연극 올린 광주 산정중 이동철 교사. 정대하 기자

“강당 전등 꺼주세요.”

“배우들 준비하시고, 올라갈 때 대사하는 친구들 마이크, 마이크 준비하세요.”

지난 18일 오후 광주 산정중학교 강당에 불이 꺼지면서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2·3학년 학생 30여명이 배우·스텝으로 참여해 연극 ‘봄볕 내리는 날’을 이 무대에 올리는 날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뒤 60분짜리 공연 대본을 외워 10일간 연습하고 무대에 올랐다.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이는 이 학교 학생부장 이동철(59·기술) 교사였다. 무대 장치는 걸개그림 6개를 장면 전환 때마다 끈을 말아 끌어 올리는 ‘수동식’으로 꾸몄다. 걸개그림은 강희정 미술 교사가 스케치한 ‘망월동’ 묘지와 계엄군 차량, 송암동 마을 풍경 등을 학생들이 물감으로 칠해 완성했다.

광주 산정중학교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연극 ‘봄볕 내리는 날’ 한 장면. 정대하 기자
광주 산정중학교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연극 ‘봄볕 내리는 날’ 한 장면. 정대하 기자

정대하 기자

“여기는 광주다. 광주는 지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폭도야” 43년 전처럼 군인들이 민간인들에게 총을 쏘자 관객석에선 “안돼” “안돼”하는 소리가 들렸다. ‘군인’들이 총을 쏘는 연기에 맞춰, 스텝들이 스티로폼을 잘라 만든 방망이로 “탕!탕!”하고 탁자를 두들겼다. 배우가 대사를 까먹고 멈칫할 땐 이 교사가 대사를 알려줬고, 관객석에서는 격려의 박수가 나왔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계엄군 장교가 5·18묘지를 찾아 사죄하고 죽음을 맞은 뒤, 오월 넋들이 나타나 ‘오월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연극은 끝났다.

광주 산정중학교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연극 ‘봄볕 내리는 날’ 한 장면. 정대하 기자
광주 산정중학교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연극 ‘봄볕 내리는 날’ 한 장면. 정대하 기자

이 교사는 2016년 무렵 신가중 때 5·18 연극을 처음 시작했다. 10개 학급의 연극 공연 중 하나로 극단 토박이의 ‘오빠의 모자(박정운 작)’를 짤막한 분량으로 공연했다. 산정중으로 옮긴 뒤 그는 2019년부터 5·18 연극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다룬 ‘도돌이표’와 이번 ‘봄볕 내리는 날’은 모두 이 교사의 창작 작품이다. 2학년 김라은양은 “5·18이 슬프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배우들의 연기나 무대 장치, 음향효과가 전문적인 연극 작품보다 떨어지지만, 또래 학생들이 배우로 직접 무대에 서니까 학생들의 몰입도가 더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 산정중학교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연극 ‘봄볕 내리는 날’ 한 장면. 정대하 기자
광주 산정중학교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연극 ‘봄볕 내리는 날’ 한 장면. 정대하 기자

연극 ‘봄볕 내리는 날’ 대본·연출
학생 30여명과 준비해 18일 공연
2019년부터 5년 연속 5·18연극
판굿·사물놀이 능한 ‘재야의 명인’
“학교 속 다문화 주제도 다루고파”

이 교사는 판굿과 사물놀이에 능한 ‘재야의 명인’으로 꼽힌다. 대전에서 자란 그는 대학 1학년 때 처음 탈춤을 만난 뒤, “자취방에서 학교 정문 앞까지 춤을 추면서 갈 정도”로 몰두했다. 대학 시절 방학 때면 탈춤·민요 강습에 참여했고, 장구와 징, 북 등 악기를 배웠다. 1986년 전두환 독재정권에 반대하던 선배가 제적당하자 징계반대 시위에 참여해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다. 시위전력 등으로 미발령 상태였던 이 교사는 대전 산업체 병설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며 대학가와 전교조 ‘전국 교사 풍물모임’의 탈춤과 풍물 강사로 활동했다.

대학 때 탈춤에 빠져 장구를 배워 국악 장단과 가락을 익혔던 이동철 명인은 판굿의 재야 명인으로 꼽힌다. 솟터 제공
대학 때 탈춤에 빠져 장구를 배워 국악 장단과 가락을 익혔던 이동철 명인은 판굿의 재야 명인으로 꼽힌다. 솟터 제공

광주에서 특수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부인이 첫 아이를 출산하자 광주로 온 그는 ‘풍물천지’라는 단체를 꾸려 공연과 풍물 교육에 힘을 쏟았다. 소고춤과 설장구에도 능한 이 교사는 2002년 공립학교 교사로 임용된 뒤 교사 문화·공연단체인 ‘교육문화연구회 솟터’ 회원이 됐다. 이 교사 등 솟터 회원들은 전라도 씻김굿 무료강습회에 참여한 뒤 2015년부터는 전남 무형문화재 제52호 신안 씻김굿 예능보유자 유점자 선생의 굿을 배우고 있다. 이 교사는 솟터 회원들과 진도팽목항(2019년)과 조도해변(2022년)에서 천도재를 올렸다.

전국교사대회에서 이동철 교사가 꽹과리를 치고 있다. 솟터 제공
전국교사대회에서 이동철 교사가 꽹과리를 치고 있다. 솟터 제공

이 교사는 가락을 들으면 머릿속에 딱 담을 만큼 기억력과 청음 능력이 뛰어나다. 솟터 회원 백금렬 교사는 “전라도 농악 가락을 치면서도 경상도나 경기도 좋은 북가락이 있으면 집어넣어 완벽한 판굿을 만들어 내는 명인”이라고 말했다. 또 궁채나 장구채 등도 직접 깎아 만들고, 굿판의 넋 형상도 종이를 가위로 오려 만들 정도로 손재주도 좋다. “비나리 축원을 하려면 목을 틔워야 한다”는 후배의 제안에 따라 판소리에 입문한 뒤, 보성소리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를 배운 뒤, ‘흥보가’와 ‘적벽가’도 익혀 다듬고 있다.

이동철 교사와 솟터 회원들이 전남 나주 한 노인요양원을 찾아가서 공연 봉사를 하고 있다.솟터 제공
이동철 교사와 솟터 회원들이 전남 나주 한 노인요양원을 찾아가서 공연 봉사를 하고 있다.솟터 제공

이 교사와 솟터 회원들은 틈틈이 요양원 등 소외시설을 찾아 예술공연 봉사도 하고 있다. 이 교사는 “다문화 학생들과 언어와 문화 등이 달라 갈등이 발생한다”며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는 주제로 연극을 한번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daeha@hani.co.kr

지난 18일 광주 산정중학교 학생 400여명이 학교 강당에서 오월 연극을 관람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지난 18일 광주 산정중학교 학생 400여명이 학교 강당에서 오월 연극을 관람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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