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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태 작가 “홍어는 민초들 눈물 밴 전라도의 힘”

등록 2023-04-13 19:17수정 2023-04-13 19:43

홍어 시 100편 모아 오늘 출판기념회
“곰삭은 홍어처럼 내맘 향기로웠으면”
문순태 시인. 문학들 제공
문순태 시인. 문학들 제공

“남도의 대표적 전통 음식의 하나인 홍어는 민초들의 고통과 눈물이 오롯이 배어 있는 정신적 가치이기도 하다.”

문순태(84) 작가가 시집 <홍어>(문학들 냄)의 서문에 쓴 글 중 일부다. 시집엔 홍어를 소재로 한 시 100편이 실렸다. 홍어를 매개로 다양한 삶의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이번 시집 발간은 2013년 첫 시집 <생오지에 누워>(책 만드는 집)를 낸 지 10년 만이다.

전라도와 홍어는 닮았다. 문 시인은 “낮은 땅에 엎드려 한을 품고 살아왔던 전라도 사람들과, 부레가 없어 떠 있지 못하고 바닥에 배를 깔고 바짝 붙어서 사는 홍어가 서로 닮았다”고 생각한다. 전라도 사람들이 삭힌 홍어를 사랑하는 것은 “발효의 고통을 오롯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삭힐수록 더 날카롭게/ 되살아나는 전라도 기질/ 아, 온몸 떨리게 하는/ 전라도의 힘이여”(‘홍어, 전라도의 힘이여’ 중)

문순태 시인의 시집 &lt;홍어&gt;. 문학들 제공
문순태 시인의 시집 <홍어>. 문학들 제공

곰삭은 홍어는 ‘부활’이고 ‘향기’다. ‘발효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홍어가 죽어서 향기 품으면/ 복사꽃 빛깔로 되살아난다/ 그러므로 발효는 부활”이라고 노래한다. “썩는 것과 삭는 것은, 숨을 멈춘 것과, 숨을 이어가는 것의 차이”(‘썩는 것과 삭는 것1’ 중)이며 “홍어는 죽어서 또 하나의 향기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어는 그리움의 상징이다. 문 시인은 ‘홍어사랑’에서 “너에게 애착하는 이유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잊혀진 사람들 냄새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움의 첫 자락에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홀로 행상을 해 그를 대학까지 가르쳤다. “납작 엎드려 온 홍어처럼/ 한평생 낮은 세상에서/ 땀에 전 몸 발효시키며/ 허리 구부리고 살아온 당신은/ 들여다볼수록 슬픈얼굴이다/ 홍어는 죽어서 더욱 향기롭고/ 어머니는 이승 떠난 후에야/ 사무치는 그리움 되었다”(‘어머니와 홍어’ 중)

문순태 시인은 웅숭깊은 전라도 정서와 맛깔스러운 남도 언어로 ‘징소리’, ‘철쭉제’, ‘백제의 미소’, ‘타오르는 강’(장편) 등을 낸 소설가다. 문학들 제공
문순태 시인은 웅숭깊은 전라도 정서와 맛깔스러운 남도 언어로 ‘징소리’, ‘철쭉제’, ‘백제의 미소’, ‘타오르는 강’(장편) 등을 낸 소설가다. 문학들 제공

그가 홍어를 처음 맛본 것은 소년 때였다. ‘내 인생의 다섯 가지 맛’이라는 시에서 그는 “할머니 저승 가신 날 코 불며 먹었던 홍어/희한한 맛에 놀라 눈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고 회고했다. 홍어 사랑은 영산포 과수원집 외동딸 출신 아내를 만나면서 깊어졌다. 수십년 홍어 애호가답게 홍어의 맛은 ‘1코’, ‘2애’, ‘3날개’ 순이라고 소개한다. ‘홍어 삼합’, ‘홍어튀김’, ‘영산강 보리싹 홍어애국’, ‘홍어젓’, ‘아내가 부쳐 준 홍어전’도 즐긴다. ‘홍어 라면탕’은 직접 요리한다.

홍어는 그에게 ‘비움’의 사유를 스며들게 했다. 문 시인은 “냄새에 추억이 쌓이면/향기가 된다는데/~/아직 내게서는 악취가 풍기니/얼마나 오욕을 덜어 내야/내 마음 향기로울 수 있을까”(‘냄새인가 향기인가1’)라고 자문한다. ‘냄새인가 향기인가2’라는 시를 통해 문 시인은 “향기는 마지막 내 꿈이었으니/죽은 후에라도 내 마음 썩지 않고/곰삭은 홍어처럼/향기로웠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홍어> 발간 출판기념회가 14일 오후 2시 전남 나주시 영산포 어울림센터에서 열린다.

한편, 문 작가는 소설 ‘철쭉제’, ‘징소리’, ‘생오지 뜸부기’ 등을 냈고, 장편소설 <걸어서 하늘까지>,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전9권) 등을 써 한국소설문학작품상, 문학세계작가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채만식문학상, 요산문학상, 송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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