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에서 그라인더 작업을 하던 60대 하청 노동자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졌다.

19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삼호중공업지회와 ㄱ(62)씨 가족 등의 말을 종합하면 12일 오전 10시13분께 현대삼호중공업이 건조 중인 선박 안에서 파워공 ㄱ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해 사내 구급대에 신고했다. 파워공은 선박 도장 작업 전 그라인더를 이용해 철판의 녹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노동자를 일컫는 말이다.

ㄱ씨는 이날 아침 8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동료와 2인1조로 작업을 한 뒤 송기마스크(머리 전체를 덮는 외부 공기 공급장치)를 벗고 10분여간 쉬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ㄱ씨가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을 땐 송기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당시 작업장에는 노동자 10여명이 있었고 ㄱ씨와 ㄱ씨 동료를 제외한 8명은 분진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ㄱ씨 동료는 가족에게 “휴식을 마치고 10시13분께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호흡이 잘되지 않아 공기줄을 확인하고 두어 차례 고쳐 썼다”며 “뒤를 돌아보니 ㄱ씨가 쓰러져 있어 곧바로 마스크를 벗기고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다른 동료에게 119신고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ㄱ씨는 사내 구급대에 의해 선박 밖으로 옮겨진 뒤 11시30분께 전남 목포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병원 진단서에는 ‘원인불명의 심장 정지로 인공호흡기 치료’, ‘심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사망 예견’이라고 나와 있다.

ㄱ씨 가족은 회사 쪽의 대응이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원인불명’이라는 병원 진단서를 내세우며 ㄱ씨의 지병 탓으로만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ㄱ씨 가족은 노무사를 고용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을 검토한 뒤 회사 대표를 경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ㄱ씨 아들은 “아버지는 평소 지병이 없으셨고 사고 날 출근할 때도 건강에 특별한 문제점은 없었다”며 “회사는 원인 규명과 위로보다는 ‘지병으로 인한 뇌사’라는 말만 반복해 가족들이 더욱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2020년 파워공 3명이 갑자기 답답함을 느끼면서 쓰러졌다가 깨어났고 2010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으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ㄱ씨의 사고 직후 노조가 송기마스크 상태를 확인했지만 정상 작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오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노동자 사이에서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정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사고 경위와 대처 방안을 묻기 위해 회사 대표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했으나 답변하지 않았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