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최고령 현역 소설가인 이명한 작가. 심미안 제공
“부끄러운 작품을 내놓아 미안한 마음뿐이네요.” 구순을 넘어 중단편 51편을 묶은 전집을 내는 이명한(91) 작가는 15일 “알리면 말릴까봐, 나 모르게 출판을 진행하고 기념회까지 준비했더라. 이 일로 여러분들을 괴롭게 했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명한 중단편전집>(전 5권, 문학들)은 문인들이 한국 문단의 최고령 현역 작가의 등단 반세기를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따스한 선물’이다. 전집 출간엔 한승원, 임헌영, 문순태, 이재백, 김준태, 김희수, 임철우, 채희윤 등 간행위원과 이승철, 이철영, 송광룡 등 실무위원 등 문인 30명과 윤준식, 김정길, 김수복, 윤만식, 김경주, 박종화 등 각계 인사 36명이 간행위원회를 꾸려 추진했다.
1931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한 이 작가는 1972년 광주에서 한승원, 주동후, 김신운, 이계홍 작가 등과 함께 ‘소설문학동인회’ 동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3년 3월엔 동인지 <소설문학> 제1집에 첫 소설 ‘효녀무’를 발표했던 그는 2년 후인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정식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번 전집엔 이 작가의 등단작부터 최신작까지 51편이 발표순으로 실려 있다. 제1권 <효녀무>, 제2권 <진혼제>, 제3권 <기다리는 사람들>, 제4권 <은혜로운 유산>, 제5권 <겨울나기> 등이다. 송광룡 시인은 “이 작가님이 따로 작품이나 소설을 따로 챙겨 놓지 않아 가까스로 수소문해 51편을 고르고 다시 타이핑을 해 전집을 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작품을 한 번 써서 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따로 모아두질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중단편 전집을 내면서 평론가들이 새롭게 주목한 작품은 ‘미로일지’(<현대문학> 1985년 12월호)다. 김영삼 문학평론가는 “이명한의 1970년대 소설들은 고향 상실, 전통과 근대의 충돌 등을 조명했었는데, 5월 광주를 기점으로 일종의 감각의 분할을 통과한 듯하다”며 “1987년 6월항쟁 이후에야 오월 광주 소설들이 출판된 사실들을 돌이켜 볼 때, ‘미로일지’는 문학사적인 재평가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남 나주시 봉황면 유곡리 출신 ‘일제 저항 시인’ 고 이석성(왼쪽) 작가와 대를 이어 소설가로 활동 중인 아들 이명한(오른쪽)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 김정훈 교수 제공
이 작가는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아버지를 보며 문학을 꿈꿨다. 부친 이석성(본명 이창신·1914~48)은 나주학생 만세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독립운동가이자 저항문인이다. 이 작가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 6·15공동위원회 남측공동대표 등을 지내며 진보적 운동가로 살아왔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아버지가 <동아일보>에 연재하다가 총독부 검열로 3개월 만에 중단된 <제방공사>를 이어서 쓰려고 했는데 아직 손을 못 대 아쉽다”고 했다.
‘이명한 중단편전집 출판기념회’는 17일 오후 4시30분 광주광역시 금남로 전일빌딩 다목적강당에서 열린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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