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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동사고 책임자들 ‘네 탓’ 공방에…유족들 “원통”

등록 2022-06-09 20:31수정 2022-06-10 02:10

사고 1주기 현장 추모식…사고 희생자 위로
1심 판결 앞둬…대책위 “책임자 반성 없어”
시민 9명이 숨진 광주 학동4구역 건물 붕괴사고 1주기를 맞은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사고 현장에서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시민 9명이 숨진 광주 학동4구역 건물 붕괴사고 1주기를 맞은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사고 현장에서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지난해 6월9일 오후 4시22분 광주 무등산을 향하던 ‘운림54번’ 시내버스에는 등산, 가족 병문안, 자녀 생일상 준비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시민이 타고 있었다. 버스가 학동증심사입구역 정류장에 정차하는 순간 인근에서 철거 중인 5층 건물이 무너졌다. 건물 잔해는 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고 1년이 흐른 현재, 허망하게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들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조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9일 오후 4시22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는 사고 1년을 맞아 희생자 영령을 위로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소복을 입은 무용수들은 진혼무를 추며 고인들의 넋을 달랬다. 종교·시민사회 대표들은 추모사, 추모시로 위로했다. 함께한 유족 30여명은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족 대표 이진의(40)씨는 “1년이 지났지만 원통함은 커져만 간다. 죄인이 된 심정”이라고 흐느꼈다. 그는 “우리는 참사 이후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생업을 포기하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건설 현장의 안전대책을 요구하며 싸웠다. 하지만 올해 1월 여섯 분의 무고한 시민이 돌아가신 화정동 참사가 발생하며 우리 유가족은 다시 한번 극도의 우울증과 무력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의 원통함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조처 탓에 더 크다고 한다. 이씨는 “진상 규명을 위한 1심 재판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책임자(피고인)들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괴롭다”고 말했다.

실제 국토교통부와 경찰은 인재에 의한 사고라고 결론 내렸지만 공사 관계자들은 모두 재판에서 책임을 부인하거나 서로에게 미루고 있다.

2021년 6월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져 구조대원들이 희생자 구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6월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져 구조대원들이 희생자 구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학동4구역 재개발구역 시공을 맡은 현대산업개발과 철거공사 하도급 계약을 맺은 전문건설업체 한솔기업은 또다시 불법적으로 광주 소재 백솔건설에 재하도급을 줬다. 사고 책임을 놓고 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위법성이 얽힌 계약 구조인 셈이다. 한솔기업의 해체계획서에는 작업반경이 큰 장비로 건물 옥상부터 철거한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 작업을 한 백솔건설은 비용을 아끼려 흙벽을 쌓아 일반 굴착기로 건물 내부로 진입해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비산먼지 민원을 우려한 한솔기업이 과도하게 물을 뿌려 마찰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굴착기 무게를 견디지 못한 흙벽이 무너지며 붕괴 사고가 난 것으로 정부는 파악했다. 동구청이 선정했던 감리자는 단 한번도 현장을 점검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공사업체 선정 과정에서 재개발조합의 비리도 뒤늦게 불거졌다.

이렇다 보니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고 책임자 7명(법인 포함)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네 탓 공방’인 셈이다.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20여차례 열린 공판에서 현대산업개발 쪽은 “불법 하도급 사실을 몰랐다. 사고는 하도급업체(한솔기업)의 잘못”이라고 진술했고, 한솔기업과 백솔건설은 “현대산업개발의 지시를 받아 작업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들은 사고의 1차 원인으로 지목된 과도한 살수에 대해서도 “(붕괴의) 직접 원인인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정부의 조사 결과도 부인하는 중이다. 재판부는 오는 13일 마지막 증인신문과 함께 결심공판을 열 예정이다.

건설현장 사고를 막겠다던 정부와 자치단체의 노력은 아직 미흡하다. 국회는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강화한 건축물관리법 일부개정안은 올해 1월, 상주감리제 도입 내용이 담긴 건축물관리법 개정안은 지난달 말에야 통과시켰다. 광주시는 건축·해체공사장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과 함께 지역건축안전센터 신설, 재난 안전관리 강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1월11일 노동자 6명이 숨진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201동 붕괴 사고 발생은 정부의 이런 조처에 대한 실효성에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4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현대산업개발 퇴출 및 학동·화정동참사시민대책위’는 “광주공동체는 참사 책임자들의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 없는 모습에 여전히 학동 참사의 충격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동 참사 이후 20개 이상 제출됐던 대책 법안들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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