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생식기 일부를 절단하는 ‘할례’를 피해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 난민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광주고법 행정1부(재판장 최인규)는 24일 시에라리온 국적 ㄱ(38)씨가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여성 할례는 박해에 해당한다. ㄱ씨는 송환될 경우 의사에 반해 박해를 받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와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ㄱ씨가 주장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점, 주장 또한 작위적인 점 등을 이유로 자국에서 박해를 받을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또 “본국 사법기관에 보호 요청을 하거나 다른 지역에 이주해 정착할 수 있어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받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여성의 가족적·지역적·사회적 상황을 고려한 위험성을 살피지 않고 난민인정을 거부·기각한 출입국사무소와 1심 판단은 위법하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여성 할례는 여성의 신체에 극심한 고통을 주는 위해행위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특정 집단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ㄱ씨에게 다른 입국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ㄱ씨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어머니로부터 여성 할례를 치르는 전통 종교단체 가입을 강요받았고, 이를 거부하자 2019년 4월 전통 종교단체 사람들에게 끌려가 여러차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 전통 종교단체 간부인 ㄱ씨 어머니는 ㄱ씨에게 직위를 이어받으라며 단체에 가입시킨 뒤 할례를 강요했다고 한다.
ㄱ씨는 친구 집으로 피신해 숨어 지내다가 2019년 9월 한국에 왔다. 그는 입국 23일 만에 광주출입국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자 “본국으로 돌아가면, 여성 할례 협박과 함께 계속해서 위협을 당할 우려가 있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아프리카와 중동 31개 국가에서 최소 2억명의 여성이 종교 등 영향으로 생식기 일부를 제거하는 할례로 고통받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시에라리온은 2015년 여성 할례 종식을 촉구하는 마푸토의정서를 비준했지만 할례는 계속되고 있고 금지 법률도 제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2017년 라이베리아 국적 10대 여성의 난민 자격을 인정하면서 여성 할례를 박해에 해당한다고 처음으로 인정한 바 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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