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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톤 거대한 폐목 그루터기 보며 새로운 나무 상상하세요”

등록 2020-10-14 19:06수정 2020-10-15 20:28

[짬] 설치미술가 한석현 작가

한석현 작가가 강원도 홍천의 옛 와동분교에 설치한 작품 ‘다시, 나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원문화재단 제공
한석현 작가가 강원도 홍천의 옛 와동분교에 설치한 작품 ‘다시, 나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원문화재단 제공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어린이들이 커다란 나무의 구멍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고, 그루터기에 오르고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작품을 만들었죠.”

지난 8월 31일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에 있는 폐교인 옛 와동분교에 다소 기괴한 모습의 나무 그루터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다 덮었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의 윗동아리는 잘려나간 채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사방으로 뻗은 뿌리와 오랜 기간 한 곳에서 자리를 지킨 나무줄기의 아랫부분만 남았다. 그루터기의 높이만 웬만한 어른 키를 훌쩍 넘어섰으며, 둘레도 장정의 열두 아름이나 된다. 그루터기의 한쪽 귀퉁이엔 새로운 생명이 삐죽삐죽 자라고 있다.

강원키즈트리엔날레의 메인 작품 ‘다시, 나무’의 모습이다. 독일 등 세계를 무대로 생태와 평화, 통일 등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켜 온 설치미술가 한석현(45) 작가의 작품이다. 오는 22일부터 11월8일까지 와동분교와 옛 탄약정비공장, 홍천미술관 등에서 열리는 ‘국내 최초의 어린이 시각예술 축제’인 강원키즈트리엔날레를 앞두고 12일 한 작가를 전화로 만났다.

한석현 작가 작품 ‘다시, 나무’. 강원문화재단 제공
한석현 작가 작품 ‘다시, 나무’. 강원문화재단 제공

그는 “시대를 굽어볼 정도로 크고 오래된 나무의 그루터기를 상상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그루터기만 봐도 어마어마한 나무의 크기와 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그루터기 옆에서 같은 뿌리를 공유하면서 자라나는 새로운 나무와 세상에 대해 상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널리 알려진 한젬마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의 초청을 받고 행사 참여를 결심한 한 작가는 처음엔 드넓은 운동장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그루터기를 생각했다. 기왕이면 홍천에서 수명을 다한 고목을 가져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홍천의 한 공장에서 ‘우드칩’이 되기 직전의 나무를 가까스로 구할 수 있었다. 이 작품 제작에만 두달 정도 걸렸으며, 지름 1m 남짓한 나무 35t이 투입됐다.

와동분교에 설치된 ‘다시, 나무’는 사실 한 작가의 첫 작품이 아니다. 2012년 경기창작센터에 첫 작품을 설치한 이후 그는 ‘다시, 나무’라는 주제로 부산시립미술관과 스코틀랜드 더프타운에 있는 글렌피딕 증류소, 미국 아이다호식물원 등 10여곳에 꾸준히 설치해왔다. 그는 “주위를 보면 충분히 재활용이 가능한 목재가 쓰레기처럼 사방에 널려있다. 경기도 대부도에서 살 때는 차에 의자나 소파 등을 싣고 와서 버리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원래 생명이 있는 나무였는데 사람이 마음대로 잘라낸 뒤 쓰다가 폐기한 것이다. 이런 나무를 모아 새롭게 자라나는 나무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22일 여는 첫 어린이 시각예술축제
강원키즈트리엔날레 메인작 맡아
‘우드칩’ 직전 나무 활용 ‘다시, 나무’
홍천군 폐교 옛 와동분교 8월 설치

“새 생명 보듬는 폐목 변화에 초점”
미국 등 10여 곳에 동명 작품 설치

‘다시, 나무(Reverse-Rebirth)’는 영문 이름처럼 벌목되거나 폐기된 나무를 모아 거대한 나무를 만들고, 나무 전체에 풀이나 잡초가 자랄 수 있도록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나무가 목재가 되는 일방향적인 과정을 뒤집고 다시 생명을 부여한다. 나무 형태의 제품들이 다시 나무의 형태로 돌아가 새로 돋아날 다른 식물의 기반이 되는 과정이며, 나무로 만들어진 제품 대부분이 재활용되지 않고 매립되거나 소각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일반 조각품이 변하지 않는 가치에 중점을 뒀다면 ‘다시, 나무’는 변화 그 자체가 작품이라는 점도 색다르다. 한 작가는 “10~20년 후에는 조각보다 잔해에 가까운 모습으로, 30년 후에는 흔적을 찾기 힘든 풀밭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몇몇 나무들이 경쟁하며 자라나 나름의 작은 ‘자연’을 이루고 100년 뒤에는 지금보다 더 크고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상상하는 작품의 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강원키즈트리엔날레에 삼겹살을 먹을 때 주로 먹는 상추를 플라스틱과 비닐로 재현한 ‘자라나는 신선함’이라는 작품도 선보인다. 그는 “자주 접하는 식재료지만 상추가 어떻게 생긴 식물의 어떤 부분인지 알고 있는 어린이들은 별로 없다. 슈퍼마켓에 집적된 현대화된 시스템은 그 식재료가 어디에서 오는지 짐작조차 어렵게 한다. 또 표준화된 맛과 색상도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감추고 자연에 대해 오해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 작가의 최근 화두는 ‘통일’이다. 그는 베를린 장벽 붕괴 30돌을 기념해 지난해 5월 베를린 중심부의 야외 전시공간인 쿨투어포럼에 ‘제3의 자연’이란 예술정원을 선보이기도 했다. 백두대간에서 자라는 남북의 야생화 1300개를 기암괴석에 심어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3차원적이고 수묵화적 풍경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이달 초 독일 연방정치교육국이 주관하는 ‘통일상 2020’에서 문화 부문 은상을 받았다.

그는 “꽤 오랫동안 누구와도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반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베를린에서의 작업에 몰두했다. 통일되면 총이나 폭탄에 죽을 수 있는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경제적·정치적 어려움을 이겨낼 강력한 원동력”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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