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1일 오전 11시29분께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의 군 사격장에서 발생한 산불은 산림 35㏊를 태우고 나흘 만에 진화됐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강릉에 산불 난 게 겨우 한달 전이에요. 근데 또 산불이라니, 아직도 심장이 파닥파닥 뜁니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에 사는 홍시호(68)씨는 지난달 17일 발생한 산불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오전 11시7분께 마을에서 불과 600m 정도 떨어진 포 사격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 불은 초속 4~5m의 강풍을 타고 주위로 퍼졌으며, 인근 주민들에겐 대피하라는 재난안전 문자까지 발송됐다. 불이 난 곳에서 1.2㎞ 떨어진 요양원 앞에는 노약자 150여명이 대피하는 것을 돕기 위해 소방버스까지 출동했다. 산림 당국이 헬기 9대 등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해 진화에 나선 끝에 불길은 3시간여 만에 잡혔다. 이 불로 산림 5000㎡가 소실됐다.
홍씨는 말했다. “오죽했으면 군부대에 전화까지 했겠어요? 까딱하면 산불 날 수 있으니 포 사격 좀 멈춰달라고 통사정을 했는데도 무시하고 포를 쏴대더니….”
지난달 17일 오전 11시7분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한 사격장에서 발생한 산불이 산림 5000㎡를 태우고 3시간여 만에 꺼졌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군 사격 훈련으로 인한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일 <한겨레>가 산림청 자료를 취합해 분석했더니, 지난 1월부터 5개월간 군 사격장과 군부대에서 발생한 산불은 30건에 74.13㏊에 이른다. 축구장 면적(0.714㏊)의 103배가 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 사격 등 군 관련 활동으로 발생한 화재는 2018년 31건, 2019년 52건, 2020년 33건, 2021년 25건, 2022년 32건이다.
문제는 사격장 산불이 산불특별대책기간(3월6일부터 4월30일)에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림청은 산불특별대책기간 운영에 앞서 국방부에 군 사격 훈련 때 사전 물뿌리기 등 예방 조처를 할 것과 산불 위험 시기엔 사격 훈련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문까지 보냈다. 하지만 올해도 산불특별대책기간 울산과 경기도 포천, 강원도 화천, 전남 신안, 경북 포항 등 전국 사격장 10곳에서 산불이 나 41.94㏊가 불에 탔다.
지난 3월21일 오전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의 군 사격장에서 발생한 산불은 48시간 만인 3월23일 오전 11시30분께 진화됐다가 같은 날 저녁 8시59분께 되살아나 나흘 만인 3월24일 오전 11시께 가까스로 진화됐다. 이 불로 산림이 35㏊나 소실됐다. 산림 당국이 화천 산불 진화에 나흘이나 걸린 것은 사격장 산불 진화의 어려움 탓이다. 산불을 빠르게 진압하기 위해서는 헬기가 공중에서 물을 뿌리는 동시에 육상 인력이 잔불 진화와 감시를 해야 하는데, 사격장은 불발탄 등 폭발 위험이 있는 군사지역인 탓에 육상 진화 인력 투입이 어렵다.
지난 3월21일 오전 11시29분께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의 군 사격장에서 발생한 산불은 산림 35㏊를 태우고 나흘 만에 진화됐다. 강원도소방본부제공
사격장 산불로 인한 주민과 군 당국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박격포 사격 중 불이 나 산림 6㏊를 태우고 6시간 만에 꺼진 경기 양평군에선 지역주민들이 사격장 폐쇄 운동에 들어갔다. 이태영 용문산사격장폐쇄 범군민대책위원장은 “사격 전에 충분히 물을 뿌리는 등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하는데,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오는 10일께부터 사격장 진출입로 폐쇄 투쟁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사격부대는 산불위험지수와 기상특보 등을 고려해 사격훈련 전 산불 위험성을 평가하고 사격 시행 여부를 판단하게 돼 있다”며 “초기 진화를 위한 방화대 편성 등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