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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어려운데…“사기 진작” 한다며 의정비 50% 인상한 울릉군

등록 2023-01-05 08:00수정 2023-01-05 09:05

시·군·구 의회 너도나도 인상
현지환 진보당 성남 수정구 지역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성남시의회 의정활동비 등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진보당 성남 수정구 지역위원회 제공
현지환 진보당 성남 수정구 지역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성남시의회 의정활동비 등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진보당 성남 수정구 지역위원회 제공

“울릉군의회 자치법규 제정 실적은 경북 23개 시·군 가운데 22등으로 최하위권입니다. 무슨 근거로 월정수당 50% 인상을 결정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지방자치법을 보면 월정수당은 주민 수, 재정 능력, 지방공무원 보수 인상률, 의회 의정활동 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게 돼 있다. 하지만 울릉군이 공개한 회의록을 보면 주민 수와 실적 등에 대해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사기 진작’ 등을 이유로 파격 인상을 결정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3년 지방공무원 보수 인상률(1.4%)과 경북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울릉군의 현실, 최하위권인 의정활동 실적 등을 고려할 때 울릉군의회의 월정수당 50% 인상은 과도하다는 게 조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앞서 울릉군과 군의회는 지난해 11월 여론 수렴 등의 과정을 거쳐 의정비심의위원회가 결정한 월정수당 50% 인상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울릉군의회는 올해부터 의정활동비와 50% 인상된 월정수당을 합쳐 연간 4141만원의 의정비를 받게 된다. 지난해 의정비는 연간 3201만원이었다. 최윤석 울릉군 기획법무팀장은 “심의위가 50%씩이나 인상할지는 군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건 맞다. 심의위는 군의회 의정비가 전국에서 두번째로 낮은 만큼 일단 사기 진작 차원에서 의정비를 올려주고 대신 일을 더 많이 하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안다. 절차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두둔했다.

대구경실련은 울릉군 의정비심의위 결정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경북도 감사관실에 감사까지 요청했다. 조 사무처장은 “이번 결정으로 인구 1만명도 안 되는 초미니 지방자치단체의 군의원들이 경북 기초의회 중 가장 인구가 많은 포항 다음으로 많은 의정비를 받게 됐다”고 씁쓸해했다. 이번 의정비 인상으로 울릉군 주민들은 올 한해 1인당 3만2161원의 의정비를 부담해야 한다. 다른 지역에 견줘 압도적으로 많은 액수다. 임명직 심의위원들이 의정비 인상 결정 권한을 임의로 행사하는 것에 대해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민생 어려운데…너도나도 의정비 인상

고물가와 고금리 등의 여파로 국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전국 상당수의 지자체가 지방의원들의 월정수당을 인상했다.

4일 <한겨레>가 행정안전부를 통해 입수한 전국 17개 시·도, 226개 시·군·구 의회의 ‘2023년 월정수당 결정금액’ 자료를 보면, 10% 이상 두자릿수 인상을 결정한 지자체는 34곳이다. 경북 울릉군이 50%로 인상률이 가장 컸고, 대전 대덕구(37%), 대전 동구(36%), 대전 중구(36%), 대전 유성구(27%), 전북 임실군(25%), 전북 순창군(25%), 충북 옥천군(23%), 전북 김제시(22%), 대전 서구(22%)가 뒤를 이었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연봉과 같은 개념으로 받는 의정비는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을 더해 책정된다. 의정활동비는 광역의원은 월 150만원 이내, 기초의원은 월 110만원 이내로 고정돼 있는 탓에 의정비를 인상하려면 월정수당을 올려야 한다. 과거에는 월정수당 인상 상한(20%)이 있었지만 2018년 상한선이 폐지되면서 의정비심의위만 통과하면 월정수당을 제한 없이 높일 수 있다.

특히 올해 적용되는 월정수당 인상은 기초의회가 주도했다. 광역의회는 전남과 충북 등 2곳만 각각 16%, 6% 인상을 결정했을 뿐 나머지 광역의회는 지방공무원 보수 인상률(1.4%) 수준에서 인상(서울·부산·광주·대전 등)하거나 동결(대구·인천·충남 등)했다.

대전에서는 동구가 월정수당 인상에 방아쇠를 당겼다. 동구는 지난해 9월 의정비심의위를 열어 무려 월정수당 월 100만원 인상(45%)을 결정했다. 하지만 공청회와 재심의 등을 거치면서 20만원이 삭감된 36.38%(80만원) 인상이 확정됐다. 동구가 월정수당 파격 인상을 추진하자 애초 1%대 인상을 추진하던 대전의 기초의회들도 저마다 재심의를 요청하는 등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감시팀장은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고유가와 높은 물가 등으로 시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현재와 같이 공무원 보수 인상률의 수십배에 이르는 월정수당 인상은 그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고 인상할 타당한 이유도 없다. 주민들이 반발하는 것은 그만큼 지방의원이 주민들에게 신뢰받을 만큼 활동하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 대전 동구청에서 열린 동구의회 의정비 100만원 인상안에 대한 주민공청회 모습. 곳곳에 빈자리가 보인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대전 동구청에서 열린 동구의회 의정비 100만원 인상안에 대한 주민공청회 모습. 곳곳에 빈자리가 보인다. 연합뉴스

공청회만 하면… 무사통과?

임기를 시작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지방의회에서 너도나도 주민 여론과 동떨어진 의정비 파격 인상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제도적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자체가 입맛대로 구성할 수 있는 의정비심의위가 문제로 지적된다. 심의위는 교육계와 법조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지방의회 등에서 추천받은 시민 10명 이내로 구성하게 돼 있다. 하지만 지방의회 눈치를 봐야 하는 지자체가 심의위를 꾸리다 보니 지방의회 입장을 대변하는 전직 지방의원과 관변단체 회원 등 의회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위원들을 채우기 일쑤다.

의정비심의위의 폭주를 막을 제어 장치가 허술한 것도 문제다. 현행 규정상 공무원 보수 인상률(1.4%)을 초과해 인상하려면 주민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묻는 여론조사를 공청회로 대신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공청회를 열 경우 자발적 참여가 많지 않고, 의원들이 동원한 주민들이 회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어 요식 절차가 되기 십상인 탓이다. 실제 높은 인상률을 결정한 대전 대덕구, 동구, 중구, 유성구는 모두 여론조사가 아니라 공청회 방식을 택했다. 김정동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주민 홍보도 부족한 상태에서 공청회가 평일 낮에 주로 진행되다 보니 주민 없는 주민공청회 같은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반면 여론조사를 거친 지자체에서는 의정비 파격 인상 움직임이 곳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광주 남구는 애초 심의위에서 월정수당 10% 인상을 결정했지만 주민 여론조사에서 61%가 반대해 결국 1.4% 인상으로 결론 냈다. 광주 광산구도 최대 20%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마련해 여론조사에 부쳤지만 시민들이 ‘0~2.5% 인상’ 항목에 가장 많은 찬성표를 던지자 2.5% 인상으로 물러섰다. 충북 진천도 20% 인상안이 제시됐지만 여론조사 결과 인상률이 높다는 의견이 과반을 차지했고, 결국 4% 인상으로 물러섰다.

주민단체 등에선 이번 기회에 지방자치법 시행령을 개정해 공청회 대신 여론조사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규정을 바꾸고, 과도한 인상 방지를 위한 상한제를 재도입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쪽은 “이번 의정비 과다 인상 과정에서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즉시 시정·권고 조처할 계획이다. 또 공청회를 통한 의정비 과다 인상 등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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