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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8m 높은 청사 터’ 놓고 싸우다 법조타운 흔들

등록 2022-11-18 05:01수정 2022-11-18 16:30

법조타운 무산 위기
1975년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에 건설된 춘천지방검찰청(왼쪽)과 춘천지방법원의 모습. 박수혁 기자
1975년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에 건설된 춘천지방검찰청(왼쪽)과 춘천지방법원의 모습. 박수혁 기자

‘더 높은 땅’을 두고 춘천지방법원과 춘천지방검찰청이 벌인 기싸움 탓에 강원도 춘천시가 3년여를 준비한 법조타운 조성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

17일 춘천시의 설명을 종합하면, 춘천지법과 춘천지검은 2019년부터 석사동 옛 군부대 터 6만6200㎡에 법조타운을 짓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춘천시와 춘천지법, 춘천지검은 2020년 3월 ‘청사 신축이전을 위한 업무협약’까지 했다.

이들은 사업비 476억원이 투입되는 법조타운이 완공되면 낡고 협소한 건물을 이용하는 데 불편을 겪어온 직원과 민원인들의 고충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금의 청사 건물은 1975년 지어졌다. 사업은 춘천시가 옛 군부대 땅을 국방부로부터 매입해 기반공사를 한 뒤 법원과 검찰에 되파는 방식으로 추진됐는데, 완공 시점은 2023년이다.

하지만 업무협약 3개월 만에 파열음이 났다. 높낮이가 다른 부지 가운데 서로 높은 곳을 차지하겠다고 두 기관이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실시설계용역’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은 경사진 지형 특성상 설계를 하면, 오른쪽에 있는 터가 왼쪽보다 최고 8m 높다. 법원은 “대로변에서 봤을 때 오른쪽은 법원, 왼쪽은 검찰이 위치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라며 더 높은 오른쪽 터를 고수했고, 검찰의 위치 변경 요구에도 ‘불가능하다’며 끝내 거부했다. 법원이 물러서지 않자 춘천지검은 춘천시에 “양 기관 높이가 평등해지는 평탄화 작업을 하라”고 요구하는 등 반발했다.

결국 양쪽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높이가 더 낮은 춘천지검 터에 흙을 쌓아 높이를 올리는 ‘성토’가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이번엔 성토 높이를 놓고 양쪽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검찰 쪽은 안전 등의 이유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성토해야 한다며 ‘9m’ 안을 제시했고, 법원은 검찰안대로 성토하면 법원 일부 부지가 도로보다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10.8m’ 안을 제시하는 등 양쪽의 갈등은 평행선을 달렸다.

이처럼 ‘상석 신경전’에서 시작된 갈등이 계속되자 춘천시가 중재에 나서 지난해에만 8차례나 법원과 검찰 관계자들이 만나 협의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0년 3월 춘천지법·춘천지검·춘천시가 법조타운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하는 모습. 춘천시 제공
2020년 3월 춘천지법·춘천지검·춘천시가 법조타운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하는 모습. 춘천시 제공

양쪽의 입장 차이 탓에 청사 이전 신축이 늦어지자 참다못한 춘천지법이 폭탄선언을 했다. 지난 7일 입장문을 내어 “춘천지검과 동반 이전을 위한 협의를 하지 않고 춘천시·국방부와 협의해 석사동 터로 단독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또 “협약 이후 법원의 꾸준한 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진척 없이 오랜 기간 지연됐다. 더는 춘천지검과 동반 이전을 위한 협의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이례적으로 검찰 쪽에 서운한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춘천지법 관계자는 “법원과 지검을 같은 날 동시에 찾는 민원인의 수는 매우 적어 법원이 단독 이전해도 불편이 거의 없을 것이다. 법원과 검찰이 함께 이전할 법적 근거가 없고, 세계적으로도 법원과 검찰이 청사를 나란히 짓는 사례는 발견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춘천지법이 실제 단독 이전을 강행하면 전국 18개 지방법원 중 검찰 청사와 떨어진 첫 사례가 된다.

법원의 폭탄선언에 춘천지검은 말을 아끼면서도 대책을 마련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춘천지검 관계자는 “(법조타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할 말은 없다”고 말했다.

양쪽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법조타운이 무산되면 그동안 춘천시가 예산까지 들여 추진한 모든 행정절차는 헛수고가 된다. 춘천시는 그동안 법조타운 조성을 위해 주민열람 공고와 시의회 의견 청취, 시 도시계획위원회 자문, 강원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행정절차를 진행해왔다. 사업비 1억5천만원을 들여 실시설계용역도 진행 중이다. 춘천시 관계자는 “법원이 단독 이전을 발표했지만 최대한 양쪽과 만나 동반 이전이 가능하도록 설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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