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방침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거센 가운데, 강원도가 일방적인 도청사 신축·이전 문제로 시끄럽다. 3천억원이 넘는 거액을 들여 추진하는 사업이지만, 제대로 된 검증이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진행된 여론조사를 두고서도 편향성 논란이 일고 있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지난 1월4일 기자회견을 열어 “현 청사는 준공된 지 65년이나 되고,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 또는 C등급인 것으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내진성능 평가에서는 붕괴 우려까지 제기됐다”며 “춘천시가 제안한 캠프페이지를 도청사 신축 터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강원도는 도청사 캠프페이지 이전 여론조사 결과 찬성 65.5%, 반대 25.2%로 나왔다며, 캠프페이지 터에 3089억원을 들여 연면적 11만㎡(사무공간 6만㎡, 주차공간 5만㎡) 규모 새 청사를 2025년 1월 착공해 2027년 6월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도는 후속 작업으로 신청사 건립 재원 확보를 위한 조례안 제정을 준비 중이다. 올해 50억원을 시작으로 2023~2026년 매년 600억원씩, 2027년 639억원 등 6년에 걸쳐 건립기금 3089억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발표 직후부터 거센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반대하는 이들은 도가 내세우는 가장 큰 청사 신축 명분인 ‘청사 노후화에 따른 안전 문제’부터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내진보강 문제 또한 청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9월 이형석 의원(광주 북구을·더불어민주당)이 행정안전부에서 받아 공개한 ‘공공시설물 내진율 현황’을 보면, 강원도는 36.1%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학교와 병원, 도로, 댐 등 도내 공공시설물 10곳 가운데 6곳 이상은 내진보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도청사를 이전하면 함께 따라가야 하는 도의회 건물은 내진성능 평가에서 ‘거주 가능’으로 나왔다. 최은예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 등도 예산 문제 때문에 내진보강 공사를 못한 곳이 있다. 지진 발생 때 도청 본관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이 때문에 청사 신축이 시급하다는 식의 여론몰이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캠프페이지 이전에 65.5%가 찬성했다는 여론조사도 여론조작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도청사는 60년 이상 돼 낡고, 지진 발생 시 건축물 붕괴 위험 등으로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도청사를 현 위치에 신축하면 임시청사 조성 등에 700억원이 추가 발생하고, 건축기간 업무·민원 불편이 우려된다. 최근 춘천시가 도청사 후보지로 캠프페이지를 제안했다. 찬반 의견은?”이라고 물은 조항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오동철 춘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현 청사 터에 신축하면 막대한 추가 부담이 든다는데, 누가 현 청사 자리에 새로 건립하는 걸 찬성하겠냐. 캠프페이지 말고도 대체 가능한 공공부지가 여럿 있는데도 이에 대한 정보 제공은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 질문의 끝에 다른 후보지도 없이 캠프페이지만 한정해 도청사 신축 찬반을 묻는 것은 찬성 응답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여론조작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원주시의원들이 지난 1월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강원도청 이전 공론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원주시의회 제공
강원도가 리모델링 등 다른 대안을 외면한다는 지적도 있다. 캠프페이지 이전 신축 계획을 발표하면서 “현 청사 리모델링 비용이 과다 소요되고, 임시청사 조성 등 행·재정적 비용이 발생한다. 리모델링보다 신축이 효율적”이라고 밝혔지만 리모델링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근거인 연구용역 관련 세부 내용 등은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행정안전부가 2010년 발표한 ‘지자체 청사 리모델링 확산 대책’에서는 “기존 청사의 효율적 활용에 대한 고민 없이 무분별하게 지어지는 청사가 대부분 호화 과대 청사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 이후 지자체 신축 청사와 리모델링 청사를 비교해보니 리모델링이 신축에 견줘 예산절감과 공기단축, 공간활용도 면에서 크게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또 리모델링은 신축에 견줘 평균 공사비가 73% 절감되고 공사기간은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고도 밝혔다.
강원평화경제연구소의 나철성 소장은 “강원도의 신청사 추진은 절차적·숙의 민주주의를 한순간에 허물어버린 전횡이며 폭거다. 추진 과정과 형식, 방법, 시기 등 모든 것이 엉망이다. 관련 정보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3천억원 이상의 예산이 집행되는데 단 한 차례의 도민 공청회도 없이 결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허영 국회의원(왼쪽부터)과 최문순 강원지사, 이재수 춘천시장이 지난 1월 강원도청에서 도청사를 캠프페이지로 이전 신축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강원도 제공
강원도의 청사 이전 신축이 반발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공론화 과정 없이 갑작스레 발표됐기 때문이다. 도는 2020년 10월 ‘도청사 신축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 착수해 지난해 8월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박천수 강원도 기획조정실장은 “이번 용역은 강원도청사 신축 필요성 확인과 신청사 규모·소요사업비를 산정한 것이다. 향후 청사 건립 방향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신축 필요성과 예산만 검토했을 뿐 위치 문제는 검토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 위원장인 허영 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갑)이 용역 결과 발표 2개월 뒤인 지난해 10월19일 당정협의에서 캠프페이지 안 창작종합지원센터 예정 터 6만㎡에 도청사를 이전 신축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캠프페이지 이전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재수 춘천시장도 한달 뒤 허 의원의 제안에 찬성하고 나섰고, 이후 최문순 지사의 공식 발표로 이어졌다. 허 의원의 제안 뒤 석달도 채 안 돼 도청사는 캠프페이지 이전 신축 방침이 확정된 셈이다.
권용범 춘천경실련 사무처장은 “도청사 새 터로 어디가 적당한지에 대한 연구용역 등 전문가 검토도 없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청사신축추진협의회 등과 같은 공론화 과정도 없었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 3명이 졸속과 기만으로 도청사 신축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결정했다. 절차적 민주성이 결여된 이번 결정은 오는 6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번복되는 등 또 다른 혼란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도는 지방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캠프페이지 이전 신축 방침은 계속 추진한다는 태도다. 우창효 강원도 청사건립추진팀장은 “보수·보강 공사는 새 청사를 신축할 때까지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다. 리모델링도 배관 등 주요 설비를 전부 교체해야 하고, 공사 기간 임시청사를 조성해야 하는 등 신축이 효율적이라는 것이 용역 결과다. 지난 1월에 신축을 발표한 만큼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행정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다른 지자체 새청사 신축 어떻게
‘끝장토론’한 대구, 논의 뒤 보류 제주
대부분 추진위 꾸리는 등 공론화
충북도는 도의회와 공간 공유도
대구 중구 주민자치위원연합회가 2019년 5월 대구시청 앞에서 신청사 현 위치 건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대구 중구 제공
새 청사 신축 고민은 비단 강원도만의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추진위원회를 꾸리는 등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이해당사자들과 논의·조율 끝에 신축 외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구에서는 2019년 시청사 이전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달서구, 중구, 북구, 달성군이 유치전에 뛰어드는 등 과열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각기 신청사 유치 타당성 연구용역을 통해 모두 자신들이 최적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구시는 ‘신청사 건립추진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시민참여단 232명, 전문가 10명, 시민단체 8명 등 250명을 모집해 2박3일 동안 토론을 벌인 끝에 4곳의 후보지 가운데 옛 두류정수장 터(달서구)를 이전 터로 정했다.
부산에선 북구청이 현 청사(1977년 건립)가 낡고 좁을 뿐 아니라 주민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2019년 7월 ‘북구 신청사 건립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추진위는 △덕천초등학교 △화명동 장미공원 △북구빙상센터 △현재 구청 등 4곳으로 후보지를 압축한 뒤, 지난해 5월 여론조사와 18개 세부항목 평가 등을 통해 덕천초를 최적지로 정했다.
본관과 5개 별관으로 분산돼 있는데다 본관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어 증개축이 불가능한 제주도에서도 청사 신축 이전 논의가 있어왔다. 하지만 재정부담을 이유로 2020년부터 보류된 상태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제주도가 제출한 ‘2021년도 공유재산관리계획안(제주시 신청사 건립)’을 2020년에 이어 두번째 심사 보류했다.
강원도청 본관에 견줘 20년이나 앞선 1937년 건설된 충북도청사 모습. 오윤주 기자
강원도청 본관에 견줘 20년이나 더 오래된 본관(1937년 건설)을 가지고 있는 충북도는 부족한 공간 문제 해결을 위해 도의회와 업무공간 공유를 선택했다.
755억원을 들여 충북도청 옆 옛 중앙초 자리 1만2620㎡에 ‘충북도의회 청사 및 충북도청 제2청사’를 짓기로 하고, 현재 실시설계가 진행 중이다. 신관에 더부살이하던 충북도의회를 독립시켜 새 청사(8864㎡·지상 5층)를 짓고, 도의회 새 청사 옆에 제2청사(5700㎡·지상 4층)를 곁들여 업무공간 부족 문제를 해소할 참이다. 올해 안에 착공, 2024~2025년께 준공할 계획이다.
정광수 충북도 청사시설팀 주무관은 “독립 청사를 바라는 충북도의회와 업무 공간이 좁아 불편한 충북도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택했다. 예산 등을 고려해 새 청사를 짓는 대신 합리적인 대안을 찾은 셈”이라고 말했다.
김광수 김규현 오윤주 허호준 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