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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의 전설’ 김득신 선생처럼’…평균 75살 늦깎이 23명 초등 졸업

등록 2021-04-26 19:31수정 2021-04-27 02:31

김득신 선생, 58살에 급제한 뒤 당대 최고 문장 반열
증평 2014년 학교 개설, 2019년 교육청 초등과정 인증
충북 증평 김득신배움학교 늦깎이 졸업생 23명이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축하하고 있다. 증평군
충북 증평 김득신배움학교 늦깎이 졸업생 23명이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축하하고 있다. 증평군

“글 얘기만 나오면 기죽어 말도 못 했는데 이제 자신 있어요. 제2의 인생길이 열렸어요.”

서울·인천 등에서 생활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아무개(64)씨는 입학 4년여 만에 지난 23일 증평군 평생학습관이 운영하는 ‘김득신배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구두 장인으로 40년을 살면서 제법 인정받았지만 못 배운 설움, 글 모르는 창피함이 늘 마음을 짓눌렀다. 평생 그리던 졸업장을 받아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이번에 김씨 등 평균 나이 75살인 늦깎이 학생 23명이 졸업장을 받은 김득신배움학교는 2014년 4월 문을 연 초등교육 배움터다. 10살에 글공부를 시작해 58살에 급제한 뒤 정선군수 등을 지낸 증평 출신 김득신 선생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대기만성의 본보기다. 사마천의 <사기> ‘백이전’을 11만3천차례 읽는 등 지독한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증평군은 김득신 선생을 본보기로 만학도를 위한 배움학교를 만들었으며, 충북도교육청은 2019년 초등학력 과정 인증기관으로 지정했다.

이날 졸업장을 받은 김씨는 배움학교를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거쳐 청주의 한 방송통신중에 진학했으며, 경비 일을 얻었다. 그는 “까막눈을 벗어나니 어엿한 일자리가 생기는 등 새 인생길이 열렸다. 중학 졸업이 1차 목표지만 배움에 끝이 없는 만큼 조금 더 욕심을 내보려 한다”고 했다.

김득신배움학교는 매주 화·목·금요일 2시간씩 국어·수학·사회 등을 가르친다. 3년 동안 240시간 가운데 216시간 이상 출석해야 졸업할 수 있다. 평균 나이 75살의 만학도 23명은 평균 3~4년, 길게는 7년 동안 공부한 뒤 졸업장을 받았다. 엄금남(69) 할머니는 “늦게 공부를 시작해 모든 글을 읽고 쓸 수 있어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어디서든 볼펜을 잡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배움학교 맏언니 최길오(84) 할머니는 딸 등 가족의 축하 속에 졸업장을 받았다. 최씨는 “글을 몰라 우체국·병원 가는 게 두려웠는데 이제 어디든 쏘다닐 수 있게 돼 기분 좋다. 코로나 졸업하면 못 걸어 다닐 때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 재밌게 공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씨 딸 신아무개(56)씨는 “엄마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저도, 제 아이들도 감동했다. 못다 한 공부 맘껏 하면서 행복한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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