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종 충북지사(앞줄 왼쪽 둘째) 등이 과수 화상병이 발병한 충주지역 한 농가를 찾아 실태를 살피고 있다.
“코로나는 격리하고 치료하면 대개 낫는다지만, 이건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 손도 못 쓰고 묻는 수밖에 없어요. 미칠 노릇이지요.”
8일 충북 충주시 산척면에 사는 홍준표(60)씨는 한숨을 지었다. 그가 사는 마을엔 굴착기 굉음이 끊이지 않았다. 과수 화상병 습격을 받은 사과·배나무를 통째 묻는 작업 때문이다. “아마 충주 포클레인은 다 우리 동네에 몰렸을 겁니다. 곳곳에서 평생 키운 과수를 묻고, 과수원을 닫으니 농민들은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입니다. 그야말로 전쟁터죠.”
지난 7일까지 충북지역 농가 250곳(152㏊)이 과수 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가운데 209곳(83.6%)이 충주다. 또 다른 의심 신고만 392건이며, 간이 진단에선 313건(충주 238건)이 양성 판정을 받아 확산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27일 확진 51곳에서 열하루 사이 다섯배 늘어난 것이다. 과수 화상병은 나무·열매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검붉게 변한 뒤 죽어가는 세균성 전염병이다. 백신·치료제가 없어 ‘과수 코로나’ ‘과수 에이즈’ ‘과수 구제역’ 등으로 불린다.
2015년 경기 안성에서 처음 발병한 이후 해마다 발생하는 과수 화상병은 올해, 충주와 이웃한 제천(38곳)·음성(2곳)·진천(1곳)으로 번진 데 이어 경기 안성(13곳), 전북 익산(2곳), 충남 천안과 강원 평창(각 1곳) 등 도 경계를 넘어 발병하는 등 대유행 조짐을 보인다. 이미 145곳(88.9㏊)이던 지난해 피해를 넘어섰다. 정부는 과수 화상병 위기 대응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농가들은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충주 산척면에서 사과 농장(1만4천여㎡)을 운영하는 이천영(58)씨는 “정부 지시에 따라 3~5월 사이 세차례 방제했지만 약효가 전혀 없다. 그나마 매몰이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인데 신고-접수-확인 등 늦은 행정처리가 확산을 부채질한다. 이대로라면 5~10년 안에 우리나라 과수농은 존폐 위기가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피해가 가장 큰 충주 산척면(115곳 확진) 농민들은 과수 화상병 보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들은 지난 4일 농촌진흥청, 8일 충주시를 찾아 보상 현실화를 요구했다. 장병산(62) 대책위 위원은 “지난해에 견줘 매몰비·보상금이 ㏊당 1억2천만원 정도 줄었다. 매몰하면 4년 동안 다시 과수를 못 심는데다, 다시 수확하려면 줄잡아 8~10년 정도 걸리는데 보상이 너무 적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충섭 농촌진흥청 재해대응과장은 “매몰 비용을 보전하는 등 융통성을 발휘해 농가의 피해를 줄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감염 경로·원인이 밝혀지지 않은데다 뾰족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김경규 농촌진흥청장도 “확산을 막고, 방제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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