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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아소에서 젖 먹이며 일했어” 한국 ‘최대 담배공장’ 역사 속 여성들

등록 2020-06-04 16:22수정 2020-06-04 16:34

청주연초제조창 여성 노동자 삶 되짚는
‘불꽃 봄꽃이 되어 다시 피어나리’ 기획전
옛 청주연초제조창 탁아소 모습. 여성들을 많이 고용했던 연초제조창은 하루 세 차례 젖 먹이는 시간을 운영했다.
옛 청주연초제조창 탁아소 모습. 여성들을 많이 고용했던 연초제조창은 하루 세 차례 젖 먹이는 시간을 운영했다.

“오전 10시, 낮 12시, 오후 3시 하루 세 번 애 젖 먹이던 시간이 있었어. 일도 일이지만 애는 키워야 하니까. 다들 그렇게 열심히 살았어.”

4일 심순자(74)씨는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일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아이 젖 먹이던 탁아소 풍경을 먼저 떠올렸다. 심씨는 1965년 1월에 일용 노동자로 취업해 2004년 연초제조창이 묻 닫을 때까지 39년을 일했다.

청주시는 심씨 등 청주 연초제조창에서 일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짚은 ‘불꽃 봄꽃이 되어 다시 피어나리’ 기획전을 옛 연초제조창을 새로 단장해 조성한 문화제조창 한국공예관 갤러리4에서 연다. 직접 가서 전시를 접할 수 있지만 한국공예관 누리집(koreacraft.org)으로도 만날 수 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사진, 영상, 기록 등으로 살필 수 있다.

청주시 내덕동에 자리 잡은 청주연초제조창은 1946년 11월 경성 전매국 청주 연초공장으로 출발해 1999년 제조창안 담배 원료공장 폐쇄에 이어 2004년 12월 완전히 문 닫을 때까지 58년 동안 운영됐다. 노동자 2천~3천명이 해마다 담배 100억 개비를 생산하던 한국 최대 담배공장이었다. 건물만 24동에 면적은 12만2181㎡에 이른다. 주변은 담배 향이 가시지 않았다.

청주연초제조창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청주연초제조창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청주연초제조창 위문 공연.
청주연초제조창 위문 공연.

이곳엔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애환이 지워지지 않는 담배 향처럼 배어 있다. 기계·관리 등은 남성들이 했지만 담배 생산, 포장 등 잔일은 여성 노동자들이 도맡았다. 심씨는 “그땐 일도 많았고, 사람도 많았다. 시어머니 등이 애를 데려오면 10~20분 정도 젖 먹이고 다시 돌려보내곤 했다. 아이는 어미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렸지만 어쩔 수 없이 돌아서야 했다. 먹고 사는 게 급했다”고 말했다.

연초제조창은 당시 청주 최고 직장이었다. 할 일이 많지 않던 여성 노동자들에겐 더욱 그랬다. 심씨와 입사·퇴사 동기인 이춘원(76)씨는 “아침 6~7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하는 게 다반사였다. 일은 고됐지만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게 좋았다. 세 아들 입히고, 먹이고, 공부시킨 것은 제조창 덕”이라고 말했다.

청주연초제조창은 생산한 담배를 동남아 등에 수출하던 국가 기간 산업 노릇을 했다. 심씨는 “한 번은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공장에 들렀었다. 당시엔 너무 신기하고 자랑스러웠었다. 지금 같았으면 휴대폰으로 찍었을 텐데 사진 한장 찍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돈도 돈이지만 자부심도 대단했다”고 했다.

옛 청주연초제조창.
옛 청주연초제조창.

청주연초제조창은 요즘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열린도서관 등이 들어선 문화제조창으로 탈바꿈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도 잇따라 열리면서 영국 테이트모던(옛 화력발전소),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옛 해군기지) 못지않은 문화 공간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곽현주 청주시 여성청소년과 주무관은 “연초 산업의 노동자로 불꽃처럼 살아온 여성들의 삶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생산의 당당한 주체로서 여성의 역할을 조명하려고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사진 청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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