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남과 북의 생명 농업이 한반도에 평화와 풍요를 가져온다. 남북 농업교류는 백 가지도 넘는 장점, 천 가지도 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지난 13일 충북도에서 창립한 사단법인 남북 생명 농업 협회 정태익(76) 이사장의 말이다. 정 이사장은 이날 남북 생명 농업 협동조합 준비위원장도 맡았다. 협회는 농업을 토대로 남북 교류의 틀을 마련하고, 협동조합은 남북 공동 영농 특구·농장 운영 등 결과물을 내는 조직이다. 다음달께 발족할 협동조합에는 정 이사장과 남북 경협 전문회사 (주)에스엔넷 김명규 대표, 이윤정 명전바이오 대표, 나용찬 전 괴산군수, 연철흠 충북도의원 등 50여명이 참여한다.

협회는 설립 취지문에서 “식량 자급자족을 하는 인도적 민족 화해 협력 기반을 조성하고, 상생 농업 협력으로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자”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때 외교통상부 남북핵통제공동위원장,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비서관, 주러시아 대사 등을 지냈다. 이후 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경남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맡는 등 남북 교류에 천착해왔다. 정 이사장은 “외교안보 수석을 할 때 안면이 있는 북한 인사도 있어 남북 교류가 재개되면 일 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기 정 이사장과 함께 외교관의 길을 걸었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오제세·김종대 국회의원, 김수갑 충북대 총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도 기념·축사 등으로 응원했다. 반 전 총장은 기념사에서 “평화와 풍요로운 한반도를 위해 유기 생명 농업으로 북녘에서 영농을 함께하려는 계획은 매우 절실하고 시의적절하다. 생명 농업으로 남북이 하나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힘을 실었다.

먼저 인도적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 나갈 참이다. 협회는 이팝나무 등 가로수 2만 그루, 유기농 액비 10t, 씨감자, 농기구를 기증 등을 통해 이미 확보했으며, 통일부 등에 무상 지원 뜻을 전달한 상태다. 정 이사장은 “지금 북한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은데 남쪽의 우수한 기술이 북한에 들어가면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고, 남쪽은 훌륭한 새 경작지와 유통 터전을 확보할 수 있다. 당장 남북 정부 간 교류가 쉽지 않는 터라 민간에서 먼저 물꼬를 터 보려 한다”고 말했다.

1997년께부터 북한에 양파 종자를 지원·재배하고 있는 중국 베이징 선현상무 유한공사 전정순(70) 대표 등이 매파 구실을 하고 있다. 중국인인 전 대표는 올해 북한에서 양파 240㏊를 재배하는 등 북한 쪽과 20여년 동안 교류해 왔다. 전 대표는 “20여 년째 함경남도, 평안남도 등에서 이어온 양파 재배가 성공하면서 신뢰가 쌓인 상태다. 최근 방북해 인도적 지원·교류와 남북 생명농업협회, 협동조합 추진 관련 뜻을 북한 농업성 등에 전했으며,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북한도 과학영농, 유기농 등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남북 농업교류를 넘어 남북 협동농장 합작·합영을 통한 유기농산물 공동 생산·유통, 기후·토양 공동 조사, 농업회사 법인 설립, 북한 내 농업대학원 개설 등도 추진할 참이다. 정 이사장은 “평양 근교에 100만평 안팎의 남북 영농 특구를 조성해 유기농 공동 재배를 구상하고 있다. 충북대와 연계해 북한 농업대학원을 세우고, 농업기술연구소 설립 등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의 교류 재개가 관건이다. 정 이사장은 “7~8월께 방북해 북한 쪽에 남북 농업협력 의향서를 교환하고는 등 구체적인 제안을 할 계획이다. 곧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할 계획이다. 정부는 물론 국회, 자치단체 등의 관심·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충북도를 남북 생명 농업 교류의 파트너로 계획하고 있다. 충북도는 지난 2015년 괴산군,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 등과 괴산에서 세계유기농엑스포를 열었으며, 오는 2022년 9월께 유기농 엑스포를 다시 여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충북 옥천군은 2001년과 2005년 과수 묘목 6만1880그루를 북한에 보냈다. 제천시는 2004년과 2007년 북한 삼일포 일대 5㏊에 사과·복숭아 과수원을 조성하고 틈틈이 과수 관리·농업 기술을 전수했지만 2007년 이후 남북 경색으로 교류가 중단됐다.

정 이사장은 “유기농업 특별도 표방한 충북도는 남북 생명 농업 교류를 위한 최적의 파트너다. 유기농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국토 중앙에 자리 잡은 지리적 여건도 좋다. 충북이 남북 생명 농업 교류의 메카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강명 충북도 농업정책과장은 “조합이 남북 교류협력단체로 등록하는 등 조직이 구체화하고, 남북 교류의 길이 열리기만 하면 적극적으로 도울 방침이다. 북한의 과학영농과 우리의 유기농이 일맥상통하는 만큼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