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 교육단체 등이 꾸린 단재고 정상개교를 위한 도민행동이 지난달 24일 충북교육청에서 단재고 정상 개교를 촉구했다. 오윤주 기자
충북교육청이 공립형 대안학교 ‘단재고등학교’(가칭) 개교 1년 연기를 공식화하고, 단재고 궤도 수정에 나섰다. 교육청은 보편적 학업 역량 충족, 촘촘한 교육과정 준비 등을 들어 ‘발전적 개교 연기’라고 했지만, 내년 정상 개교를 촉구하는 시민·교육단체 등은 ‘미래 교육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반발한다.
충북교육청은 20일 “단재고를 대안학교로 설립한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다. 새 모델의 공립 대안학교로 교육과정을 촘촘하게 준비하려고 발전적으로 개교 연기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또 “책임 교육 차원의 보편적 학업 역량 충족, 다차원적 역량을 기르는 학습의 장 제공 등을 위해 현실적·구체적·실현 가능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교육청은 이번 주 안에 단재고 적정 교육과정 마련을 위한 티에프팀(전략팀)을 구성·발족할 참이다. 교육청은 교과 교육과정 전문가(10명), 대안교육 전문가(2명), 교육과정 담당 교육전문직(3명) 등 인선을 마쳤다. 충북교원단체총연합회·충북교사노조·전교조충북지부·미래교육연구회 등에도 19일까지 1명씩 추천을 요청했지만, 전교조충북지부·미래교육연구회 등은 참여하지 않았다.
정길재 ‘단재고 정상개교를 위한 도민행동’(도민행동) 위원은 “미래교육연구회 등이 2018년부터 5년 동안 단재고 교육 비전·목표·교육과정 등을 준비했는데 티에프에 달랑 1명만 참여시키려는 것은 들러리 세우기·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꼼수”라며 “도민행동은 윤건영 교육감과 면담과 대화창구 마련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이상명 충북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사는 “일단 티에프를 발족하고 필요 인원을 추가하는 등 유동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티에프 논의를 거쳐 6월 말이나 7월 초께 단재고 설립 방향 등을 제시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감과 도민행동의 면담 등은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단재고는 진보성향 김병우 전 충북교육감 때인 지난 2018년부터 추진됐다. 교사 등은 충북대안교육연구회 등을 꾸려 교육과정 등을 연구했고, 2020년 교육부 대안학교 설립 교육과정 공모에 선정되면서 설립이 가시화됐다. 국비 등 162억원을 들여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옛 가덕중 터 2만2141㎡에 학교를 설립한 뒤 2024년 3월 개교한다는 충북교육청의 계획은 지난 2020년 12월 교육부 재정투자 심의까지 통과했다. 이곳은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고향으로, 단재 선생 등이 세웠던 교육기관 ‘산동학당’과 지척이다.
하지만 윤 교육감이 당선한 이후 지난해 12월 단재고 개교·교육과정 전면 재설정을 결정했고, 개교 시기도 2024년에서 2025년 3월로 수정했다. 정길재 도민행동 위원은 “단재고 설립을 위해 교사 등이 5년 동안 국외연수·정책연구 등 역량을 키워왔는데 모두 물거품이 됐고, 그동안 들인 노력·예산도 모두 날아갔다”며 “단재고 시설도 미래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는데, 대학 입시 등을 겨냥한 경쟁 교육으로 전환하려면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청이 단재고 개교 연기 이유로 든 것은 보편적 학업 역량 충족과 촘촘한 교육과정 준비다. 김 전 교육감 때 대안교육연구회·미래교육연구회 등의 연구를 토대로 교육청이 제시한 단재고 교육과정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명 충북교육청 장학사는 “기존 단재고 교육과정을 보면 1학년 기본 교과로 국어·사회·한국사 등 12단위(학점)만 편성했는데 현행 일반고 1학년 기본 교과는 7과목 48학점이다. 단재고가 대안학교이긴 하지만 대학진학, 보편적 학업 역량 충족 등을 고려해 과목 다양성과 어느 정도 학점 반영이 이뤄져야 한다. 교사 수급·수업 편성 등 교육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길재 도민행동 위원은 “단재고는 학생 96명(예정 정원)이 96가지 학업 설계를 하는 대안교육 기관이다. 필요하면 학생 스스로 영어·수학·사회·과학 등 다양한 과목·시수 등을 설계하면 된다. 대안교육의 핵심은 자기주도·자기 설계 교육”이라고 밝혔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덕면발전대책위원회 등이 꾸린 도민행동은 단재고 개교 연기에 다른 속내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단재고는 교육부가 교육과정을 검증한 학교인데 윤 교육감이 대학 선택권 확대를 위해 교육 과정을 재설정하려고 개교를 연기한 것은 전 교육감 흔적 지우기, 진영 논리에 따른 편 가르기”라며 “공교육과 미래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단재고의 취지를 흐리지 말고, 기존 교육과정을 수용하고 예정대로 내년에 개교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교육청은 “단재고 개교 연기를 입시 경쟁 교육, 전 교육감 지우기 등 진영논리로 해석하는 것에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 공립형 대안학교로서 단재고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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