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정현양과 어머니 양성선씨. 사진 충북교육청 제공
아이는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다. 아이의 발음은 흐릿했지만 음정은 정확했다. 자폐를 지닌 아이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싶던 엄마는 멜로디언을 손에 쥐여줬다. 단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여섯 살짜리 아이는 ‘애국가’를 능숙하게 연주했다. 이 아이는 지금 어엿한 첼리스트 이정현(16·청주 경덕중 3)으로 불린다. 그는 올해 엠브로스 마틸다 국제음악경연 특별상, 리틀모차르트 콩쿠르 준대상, 국제서울음악콩쿠르 1등 상을 받았다. 지난 2018년 4월 첼로에 입문한 이후 20여 차례 크고 작은 상을 받는 등 정상급 첼리스트의 길을 향해 가고 있다.
정현이는 14일 오후 <대전방송> 등에서 주관하는 ‘전국장애학생음악콩쿠르’ 갈라콘서트 초청 연주 무대에 섰다. 연주에 앞서 그의 그림자인 어머니 양성선(49)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첼로는 정현이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다. 연주할 땐 눈빛·표정·행복감이 샘솟는듯하다”고 말했다.
이정현양은 첼로 연주로 올해만 3개의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 충북교육청 제공
정현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지니고 있다. 내년 충북예술고에 진학할 예정이지만 언어·표현력 등은 초등생 수준에 못 미치고, 사회성도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악기 연주에 관한 한 천재성을 발휘한다. 첼로뿐 아니라 피아노, 가야금, 플루트, 기타 등을 능숙하게 다룬다. 모두 자폐 치료를 위해 어머니가 권한 것이다.
정현이는 장애인 청소년 오케스트라 헬로우샘에 입단하면서 첼로를 처음 잡았다. 어머니는 “연주 소질이 있는 정현이가 협연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고, 심신을 치유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케스트라에 보냈다. 중저음을 좋아하는 정현이의 기질과 첼로가 만나 재능을 발휘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정현이의 천재성은 그림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악보·가사 등을 버무려 자신만의 그림 악보를 만드는 데 기발하고 독특하다. 동요 ‘오빠 생각’은 논에서 우는 뜸북새, 말 타고 서울 간 오빠 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차이콥스키의 ‘페조 카프리치오소’ 등 가사 없는 곡은 느낌을 악보로 옮긴다. 그래서 악보 없이 이 그림만으로도 연주한다. 이들 그림 악보는 지난해 10월 ‘스페셜 올림픽 코리아’가 주관한 스페셜 올림픽 미술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정현양이 그린 동요 ‘오빠 생각’ 그림악보. 사진 충북교육청 제공
이정현양이 그린 차이코프스키의 ‘페조 카프리치오소’ 그림 악보. 사진 충북교육청 제공
전수민 경덕중 특수교사는 “음악·미술에 관한 한 정현이는 천재다. 학교생활을 할 땐 조금 산만하지만 악기만 잡으면 영락없는 프로 연주자가 되고, 펜으로 자신의 느낌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데 색감 등이 놀랍다”고 말했다. 정현이는 세계적인 첼리스트의 꿈을 키우고 있지만, 어머니는 장애를 넘어 평범한 생활인이 되기를 바란다. 양씨는 “요즘 정현이는 세계적 거장 미샤 마이스키 연주에 빠져있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며 “아직은 아이에 머물러 있지만 음악을 통해 자아를 찾고 행복해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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