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마중 단원 강성순(왼쪽부터), 남현욱, 이하은, 반승호, 김영아, 김혜경, 정수흠, 엄영욱씨. 뒷줄 얼굴 안보이는 이는 최동건씨다. 극단 마중 제공
“이제 길에서 알아보고 말 걸어주는 사람도 있어요. 참 신기해요. 연극 때문이죠. 연극은 정말 너무 재미있어요.”
충북 제천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극단 마중의 배우 김혜경(40)씨의 말이다. 12일 전화로 만난 김씨는 맑고, 밝았다. 김씨는 요즘 새 작품 <청춘> 연습에 여념이 없다. 김씨는 <청춘>에서 괴팍한 손님을 연기한다. 김씨는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말하고, 연기하는 게 신나고 보람 있다. 앞으로도 무대에서 장애인인 우리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마중은 오는 20일 오후 2시 제천시 고암동 금용아파트 금용상가에 있는 소극장에서 <청춘>을 공연한다. 마중은 지난해 비어있던 이 상가 지하실 가게 공간 231㎡를 새로 단장해 소극장으로 꾸몄다. 이 소극장은 마당의 연극 연습실이면서 공연장이다.
<청춘>은 20대 장애인 청년의 고민과 사랑을 담은 작품으로, 공연 시간은 35분 정도다. 구인 광고를 보고 한 레스토랑에 어렵사리 취업한 청년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당 해고된 뒤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춘> 주인공을 맡은 반승호(27)씨는 “<청춘>은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다. 내 속에 담겨 있던 이야기를 대사로 드러내고, 연기하니까 재미있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신난다”고 말했다.
<청춘>은 <친절한 미경씨>, <그놈의 사랑>에 이은 극단 마중의 세 번째 작품이다. <친절한 미경씨>는 마중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에서 생활하는 손미경(53)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손씨는 실제 생활에서도 누군가 담배꽁초 등을 버리면 현장에서 호통을 치는 등 제천에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자로 꽤 유명하다. <그놈의 사랑>도 장애를 보는 사회적 편견과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다뤘다.
이들 작품 모두 민병삼(54) 마중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팀장이 썼다. 민 팀장은 서울 대학로 무대에 섰던 연극인이다. 민 팀장은 “장애인들에게 자신감을 주려고 행동 치료의 하나로 연극 공부를 시작했는데 효과가 좋아 아예 극단을 꾸리고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단원들은 장애인이 아닌 무대 배우로서 시민을 만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무대에 선 배우나 객석의 관객 모두에게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1·2급 11명…지난해 창단
세 번째 창작극 ‘청춘’ 20일 공연
20대 장애인 고민과 사랑 담아
대학로 출신 연극인 민병삼씨 지도
장애인 센터서 주 이틀 연극 수업
“이제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극단 마중은 지난해 9월30일 창단했다. 애초 배우 9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11명이다. 이들 배우는 모두 지적장애 1~2급 장애인이다. 이들은 한걸음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마중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에서 국어·합창·교양·요가 등을 익히며 생활하는데, 매주 월·수요일 2시간씩 짬짬이 연극을 공부한다. 공연 2주 전부터는 날마다 연기에 매달린다. 민 팀장은 “대사를 외우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조금 어려움을 겪지만 연기에 대한 몰입과 집중은 여느 배우 뺨칠 정도로 대단하다. 무엇보다 연극을 좋아하고, 즐긴다”라고 귀띔했다.
극단 마중은 제천에선 제법 유명세를 탄다. 지난해 10월 창단 기념 공연에 이어 같은 해 11월엔 제천 의림지 야외무대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지난 1월 공연엔 이상천 제천시장 등 관객 80여명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마중 배우 손미경씨는 “제천시장과 가족, 친구 등 많은 이들이 공연을 보러와 너무 좋았다. 나 자신이 뿌듯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것은 늘 즐겁다”고 했다. 손씨는 코로나19 탓에 집에서 격리하면서도 새 작품 <청춘> 막바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극단 마중은 장애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제천시 장애인가족지원센터는 다음 달 창립 11돌 기념행사 때 극단 마중을 초청했다. 제천문화재단이 올해부터 극단 마중을 지원하기로 해 배우들은 약간의 출연료도 받는다. 오는 6~7월께 새 작품 <속마음>(가칭)도 선보일 참이다. <속마음>도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민 팀장은 “마중 배우들은 현실에선 편견 때문에 힘겨워하지만 무대에선 주인공으로서 당당하다. 장애인 배우의 말과 몸짓으로 무대에서 장애인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다. 다양한 무대에서 다양한 계층과 만날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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