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의 여성전문 도서관인 충북 제천여성도서관을 남성에게도 개방하자 논란이 인다. 제천시가 양성평등 취지에 따라 남성 이용을 허용한 것인데, 애초 설립 취지에 맞게 ‘여성 전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을 잇는다.
제천여성도서관은 지난 1일부터 남성도 도서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1994년 4월 문을 연 지 27년 만에 남성에게도 이용이 허용됐다. 다만, 여성 공부방으로도 쓰는 3층 열람실은 여전히 여성 전용이다. 아직은 남성 10여명만 찾는 등 이용이 활발하진 않다.
제천여성도서관이 남성 이용을 허용한 배경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있다. 2019년 8월30일 남성단체 등이 인권위에 도서관 개방 관련 진정을 하자 인권위는 실태조사에 나서 지난해 11월20일 “남성 이용자가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제천시는 시립도서관 등과 협의를 거쳐 남성에게도 부분적으로 시설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이지희 제천시립도서관 주무관은 “양성평등이라는 시대 상황과 여성 전용 도서관이라는 시민 인식, 여성 공부공간을 마련해달라고 한 도서관 용지 기부자의 뜻 등 여러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남성 대출 서비스만 허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제천여성도서관은 삯바느질 등으로 모은 돈을 기부한 고 김학임 할머니의 유지에 따라 전국 유일의 여성 전용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김 할머니는 1991년 제천시 독순로 70 일대 땅 344㎡를 제천시립도서관 건립 부지로 시에 기부했다. 도서관 건립 논의 과정에서 그는 “규모가 작으면 여성도서관 건립이라도 원한다”는 뜻을 전했고, 제천시가 8억원을 들여 3층 규모 여성도서관을 만들었다. 지금은 장서 5만8천여권을 보유하고 해마다 20여만명이 찾는 도서관으로 성장했다.
제천여성도서관이 남성에게도 문을 열자 도서관·제천시청·인권위 누리집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인권위 권고와 제천시의 결정을 비판하고, 여성 전용을 유지하라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박아무개씨는 인권위 누리집에 “현재 성차별이 사라진 양성평등 시대인지 고려해야 한다. 차별받던 여성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도서관을) ‘여성 전용’으로 남겨야 한다”고 썼다. 김아무개씨는 “제천여성도서관의 ‘여성’의 의미는 남성 배제가 아닌 여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인권위 판단을 철회하라”고 했다. 지난 6일 시작한 ‘제천여성도서관 남성 도서대출 서비스 중단·폐지 요구’ 청와대 국민청원은 14일 오후 4시까지 4만3천여명이 동의했다.
류인숙 제천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사무총장은 “남성 이용 허가 문제는 단순한 차별·역차별의 문제를 넘어 여성 안전이나 도서관 설립 취지 등을 모두 고려했어야 했다. 여성으로서 못 배운 한을 담아 기부한 김 할머니의 유지를 헤아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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