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여년전 창고에 왜 나뭇잎을 썼을까?.
충북 옥천군 청성면 이성산성(충청북도기념물 163호)에서 ‘목곽고’가 발굴됐다. 목곽고는 나무로 만든 상자 형식의 창고다. 창고는 성을 발굴하고 있는 재단법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아래부터 선사연구원)이 최근 찾아냈다. 선사연구원은 2015년 1차 조사에서 토성의 축조법 등을 확인했고, 지난해 6월 시작한 2차 조사에서 성곽 축조방법, 성 안 시설 등을 발굴하고 있다.
창고는 땅속에서 나왔다. 당시 성 안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면 아래를 굴착한 뒤 창고를 만들었으며, 창고는 나무·흙으로 덮여 있었다. 크기는 가로 422㎝, 세로 415 ㎝, 깊이 111㎝로, 정사각형에 가깝다. 바닥에 테두리 틀을 놓고 그 위에 길이 130~150㎝, 너비 20~40㎝, 두께 5㎝ 안팎의 판재를 쌓아 올린 형태다. 강병숙 옥천군 관광개발팀 학예연구사는 “판재의 면이 고르게 마무리돼 있는 등 정교하게 만들어진 듯하다. 더 조사해야 하지만 목재전문가들이 맨눈으로 봤을 때 참나무 계열 판재로 보인다고 했다”고 밝혔다.
바닥·벽 등에서 놀라운 것이 나왔다. 나뭇잎이다. 성인 손바닥 크기(길이 15~20㎝, 가운데 폭 7~8㎝)였다. 화석화한 것도 있지만 맨눈으로 보기에도 원형에 가까웠다. 경북 문경 고모산성, 충남 공주 공산성, 대구 팔거산성 등에서도 목곽고가 나왔지만 바닥에 나뭇잎에 깔린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이성산성을 발굴하는 최관호 선사연구원 연구원은 “형태로 볼 때 축조 당시 바닥에 나뭇잎을 깐 것이다. 개펄 같은 진흙 속에 있어서 그런지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놀랍다”고 말했다.
학계는 나뭇잎의 쓰임새에 주목하고 있다. 최 연구원은 “일단 목곽고의 한 부분만 조사한 상태지만 바닥 전체에 나뭇잎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수·방습, 인장력 강화 용도 등 독창적 쓰임새에 관한 추정이 나온다. 나뭇잎이 나온 목곽고는 처음이어서 특히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사연구원은 관련 학계의 도움을 받아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목곽고에 쓰인 나무 재질, 나뭇잎의 종류 등을 연구할 참이다. 최 연구원은 “목곽고의 용도를 파악하는 데도 나뭇잎이 열쇠다. 방수·방습 등을 위해 썼다면 물 저장고로 쓰였을 수 있다. 물론 식량 등 다른 중요 자재 보관 창고였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곽고와 함께 이성산성의 존재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성산성은 성곽 둘레 1140m, 면적 5만9160㎡로 규모가 큰 토성이다. 이성산성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옥천 청산현 이성산성 기록에 따라 지금까지 이성산성으로 불린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개축 굴산성’기록이 나온다. 486년에 굴산성을 새로 쌓았다는 기록이다. 이 성을 1500년 전에 쌓았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당시 옥천 청산·청성이 굴현이었는데 굴산성을 굴현의 치소성(현 소재지 성)으로 추정한다. 성의 위치, 성에서 나온 굽다리잔 등 5~7세기 당시 출토 유물 등으로 미뤄 굴산성이 이성산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옥천군 등은 이성산성을 국가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 맡겨 오는 10월까지 목곽고 발굴·보존을 진행할 참이다. 최 연구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뭇잎 바닥 목곽고가 나오는 등 희소성·독창성이 뚜렷하다. 토성 축조, 개축 등 신라 시대 산성 연구에도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사진 옥천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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