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최근 자기앞수표를 통해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의심되는 고액체납자의 집을 수색해 현금 1700만원을 찾아냈다. 서울시 유튜브 갈무리
‘돈이 없다’며 세금 수천만원을 체납하면서 수억~수십억원짜리 수표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면?
서울시가 이런 아이디어를 착안해 고액자들로부터 십수억원 체납세금을 받아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최근 고액체납자들의 자기앞수표 사용 현황을 파악해 74명으로부터 13억원을 징수했다고 28일 밝혔다. 서울시는 10개 시중은행으로부터 고액체납자 623명(체납액 812억원)의 최근 2년간의 자기앞수표 교환 자료를 확보해, 이들이 1만3857회에 걸쳐 1714억원의 수표를 교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고액체납자들을 불러 자금출처·교환목적·사용용도 등을 조사하고, 조사를 거부하거나 세금 납부를 회피할 경우 가택수색에도 나섰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최근 자기앞수표를 통해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의심되는 고액체납자를 추궁하고 있다. 서울시 유튜브 갈무리
사채업을 하는 ㄱ(56) 씨의 경우 2012년 12월 자동차세 등 36건 4100만원을 체납했는데, 최근 2년 동안 수표 438억8700만원 어치를 교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38세금징수과 소환조사에서 그 동안 수집한 증거들을 제시하자, ㄱ씨는 친구 명의로 보관해 둔 가상자산(암호화폐) 15만코인을 납세담보로 제공했다. 또 다른 사채업자 ㄴ씨는 2016년 지방소득세 등 2건 3800만원을 내지 않았다가 올해 1월에만 자기앞수표 19억원을 교환했다. 해당 은행 등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ㄴ씨는 제발로 걸어와 체납액 전부를 냈다고 한다.
시 관계자는 “사실 자기앞수표는 책 사이에만 끼워 넣어도 수억~수십원을 숨길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추적에 나서지 못했다”며 “이번이 첫 시도지만 앞으로도 수표를 활용한 재산은닉 체납자들을 끝까지 추적하겠다. 제2금융권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여, 현재 587개 금융기관의 자기앞수표 교환내용을 추가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시는 고액체납자 380명(체납액 620억원)의 주식 1038억원어치도 압류했다고 밝혔다. 과세당국이 항시 주식재산을 들여다보지 않는 점을 악용했던 체납자들은 ‘즉시 세금을 납부하겠다’, ‘강제매각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압류 주식은 당국이 증권사에 매각을 요청하면, 매각 요청일 기준 개장일 동시호가로 매각된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