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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째 ‘의문의 봄’…김진숙이 박창수의 아들에게

등록 2021-05-07 13:58수정 2021-05-07 20:34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의문사 30년…추모대회 열려
입사 동기 김진숙 위원 “영혼만이라도 함께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6일 열린 ‘제30주기 박창수 열사 추모대회’에서 추모사를 읽고 있다.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6일 열린 ‘제30주기 박창수 열사 추모대회’에서 추모사를 읽고 있다.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노조를 만들어 활동하다 의문사를 당한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30주기 추모식이 그가 숨진 경기 안양시 샘병원(옛 안양병원) 앞에서 6일 열렸다.

민주노총 경기중부지부와 금속노조 경기지부, 안양·군포·의왕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은 이날 저녁 6시 안양시 샘병원 앞에서 박창수 위원장의 아버지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심진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 노동자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30주기 박창수 열사 추모대회’를 열었다.

안양 샘병원은 박창수 위원장이 의문사를 당한 곳이다. 1981년 8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전 한진중공업)에 배관공으로 입사했던 박 위원장은 1990년 민주노조를 창설하고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박 위원장은 한 해 뒤인 1991년 2월 경기도 의정부 다락원 캠프에서 열린 노조 연대회의 수련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뒤 대공분실을 거쳐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서울구치소에서 당시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군 사건에 항의해 단식투쟁을 하던 중 1991년 5월4일 머리를 서른여덟 바늘이나 꿰매는 의문의 상처를 입고 안양병원으로 이송되었다가 이틀 뒤인 5월6일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유가족과 노조, 시민사회단체, 학생들이 박 위원장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저항하자 경찰은 5월7일 안양병원에 백골단과 전경 22개 중대를 투입해 박 위원장의 주검을 탈취해갔다.

1991년 5월7일 백골단이 콘크리트 벽을 뚫고 안영병원 영안실에 난입하자, 고 박창수 한진중공업 위원장의 유족들이 격렬하게 제지하고 있다.<한겨레> 자료사진
1991년 5월7일 백골단이 콘크리트 벽을 뚫고 안영병원 영안실에 난입하자, 고 박창수 한진중공업 위원장의 유족들이 격렬하게 제지하고 있다.<한겨레> 자료사진

이날 추모대회에서는 고 박창수 위원장의 한진중공업 배관공 입사 동기인 김진숙 위원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김 위원은 당시 6살 어린이에서 이제 결혼을 앞둔 36살의 성인이 된 박창수 위원장의 아들 용찬씨에게 보내는 글에서 “주검마저 빼앗겼던 기가 막히던 세상, 맘 놓고 울지도 못했던 봄, 그렇게 서른 번의 봄이 지나갔고 네 아빠를 위원장으로 추천하고 변호했던 분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그 기막힌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싸웠던 분이 대통령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진실들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구속됐던 네 아빠도 해고자다. 같이 복직하고 싶었던 내 동기. 네 아빠의 영혼만이라도 함께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네 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주던 그 배관공장을 다시 가보고 싶었다”며 “자랑스러운 박창수 위원장의 아들로, 이 땅의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며 말을 마쳤다.

심진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제가 한진중공업을 입사한 것은 고교를 졸업하고 난 뒤인 1993년이었다. 배관공으로 일하면서 선배 노동자들을 통해 박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30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고 박 위원장이 숨진 이곳에서 추모대회를 열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박 위원장처럼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이 오도록 살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추모대회를 마치고 안양 엘에스로로 자리를 옮겨 던킨도너츠 BR 코리아지회 노조탄압 규탄 민주노조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1991년 6월 30일 고 박창수씨의 아들 용찬군이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노제를 지내기 위해 회사 정문을 나서는 장례행렬의 선두에 서서 행진하고 있다.&lt;한겨레&gt; 자료사진
1991년 6월 30일 고 박창수씨의 아들 용찬군이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노제를 지내기 위해 회사 정문을 나서는 장례행렬의 선두에 서서 행진하고 있다.<한겨레> 자료사진

아래는 김진숙 위원의 추도사 전문이다.

살아서 다시 맞는 봄,

우린 언제나 억울함 없이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때 여섯살이었던 네가 서른 여섯살이 된 세월. 우린 언제쯤이면

울지 않고 그 이름을 불러 볼 수 있을까.

너에겐 기억도 아련한 아빠겠지만 우리에겐 청춘을 함께 보낸

친구였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함께 꿈꿨던 동지였던 사람.

용찬아 기억나니? 네가 세 살 때 식목일이었다.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던 날, 몇 사람이 어린이대공원엘 놀러 갔었고

네가 뭐가 탈이 났는지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며

쓰러졌고 너보다 더 창백해진 얼굴로 널 업고 산길을 비친듯이

뛰어내리던 네 아빠의 모습을 40여년이 지났어도 잊을 수가 없다.

집회 때면 아빠 껌딱지였던 네 손을 잡고 와선 널 보며

봄꽃 보다 환하게 웃던 아빠. 박창수 자살이라는 뉴스가

거짓이라고 확신했던 것 그 웃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래오래 살았으며 얼마나 좋았을까. 너와 네 동생의 아빠로 오래오래 살고 싶었을

사람.

그러나 노동자로 인간답게 사는 꿈이 죄가 되던 시절이었었단다.

네 아빠가 위원장에 당선되던 날. 난 감옥에 있었고

투표를 마친 네 아빠가 면회를 와서는 붉어진 눈으로 창살을 붙잡고

“인자 고생 끝났는가. 조금만 더 고생하이소”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거의 매일 만나 회의를 하고 숱한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수많은 말들을 나누었는데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정의롭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끌려가던 시절

그렇게 끌려간 사람들이 저수지에서 바다에서 피멍든 시신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옥상에서 내던져지기도 하던 시절.

용감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하던 시대

주검마저 빼앗겼던 기가 막히던 세상.

맘 놓고 울지도 못했던 봄, 그렇게 서른 번의 봄이 지나갔고

그때 박창수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시던 백기완 선생님도

아빠의 곁으로 가셨다.

네 아빠를 위원장으로 추천하고 변호했던 분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그 기막힌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싸웠던 분이 대통령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

거의 날마다 사람이 죽던 그 잔인한 봄으로부터 우린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걸까. 아직도 노동자들의 세상은 (네 아빠가 있던)

안양구치소이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세상과 까마득히 먼 85 크레인에 고립돼 있다.

구속됐던 네 아빠도 해고자다. 같이 복직하고 싶었던 내 동기.

네 아빠의 영혼만이라도 함께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네 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주던 그 배관공장을 다시 가보고 싶었다.

용찬아,

어버이날이면 요구르트병에 카네이션을 꽂아놓고 아빠를 기다렸다는

네가 결혼을 하는구나. 너도 이제 곧 네 아이를 보며

네 아빠처럼 웃는 아빠가 되겠지 축하한다. 용찬아

그리고 미안해. 오래오래 행복하려무나.

자랑스러운 박창수 위원장의 아들로, 이 땅의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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