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부터 양봉에 뛰어들어 고양시 일산에서 완숙꿀을 생산하고 있는 농업회사법인 온스의 심온 대표. 온스농장 제공
“지금까지 야생화 완숙꿀의 성분 분석 사례가 없어 궁금했는데 이번 결과를 보고 누구보다 제가 깜짝 놀랐어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법곳동에서 벌꿀 농사를 짓고 있는 농업회사법인 온스의 심온(53) 대표는 지난 1월 식품성분 분석 국제공인기구인 한국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 분석을 의뢰해, 최근 ‘온스농장 완숙꿀의 플라보노이드 함량이 12.980mg/100g으로, 뉴질랜드 산 마누카 꿀의 1.468±0.126mg/100g보다 9배가량 높다’는 결과를 받았다. 플라보노이드는 페놀계 활성산소 억제 물질로 벌꿀에 함유된 항산화물질을 비교하는 척도로 꼽힌다.
심 대표는 10일 인터뷰에서 “한국 벌꿀의 효능이 세계적인 유명 제품 못지 않다는 연구 결과는 몇 차례 나왔지만, 벌꿀의 생산·관리·검증·공인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은 탓에 우수성을 입증할 기회가 없었다”고 이번 조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고양시 법곳동에서 5년째 잡화꿀 양봉
‘밀봉 벌집에서 자연숙성해 연1회 채취’
한국농업기술실용화재단서 성분 분석
‘마누카꿀보다 플라보노이드 함량 9배’
생산량 적어 수지 맞지 않지만 ‘고집’
“밀원 가로수 심어 도시양봉 지원을”
심온 대표는 벌침 성분의 치료 효능을 체험한 뒤 양봉을 시작했다. 사진 온스농장 제공
“10여년 전 스트레스로 어깨 석회와 위염을 얻어 3년간 병원 치료를 받으며 고생했어요. 그때 벌침 성분의 봉독주사로 효과를 본 뒤 벌에 푹 빠지게 됐어요. 공부를 하다보니 영세한 양봉인이 살아남는 방법은 고급꿀을 생산해 브랜드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죠.”
벌통 한 개로 양봉을 시작한 그는 5년 전 본격적으로 벌꿀을 채취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농업회사법인 온스를 세웠다. 지난 2018년 10월에는 법곳동에서 ‘허니순 꿀벌농장’의 문을 열었고, 고양시평생학습카페로 지정받아 다양한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가족 단위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꿀벌생태체험, 벌꿀 수확체험, 밀랍초 만들기, 꿀 비누 만들기 등이다.
심 대표는 “농장 주변에 특별한 밀원 식물은 없지만 다른 도시의 변두리처럼 민들레 등 야생화와 산벚나무, 아카시, 밤나무 등 다양한 꽃나무들이 산재해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에 성분이 확인된 ‘완숙꿀’은 초봄부터 가을까지 벌들이 벌집을 다 채우고 밀봉하기를 기다렸다가 딱 한번만 채취하는 자연숙성꿀이다. 연 2~6회 채취해 열을 가해 수분을 줄이는 인공 농축꿀이나 일반 숙성꿀 등과 달리 완숙꿀은 미네랄, 아미노산, 항산화물질 등 영양소가 풍부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생산량이 많지 않아 수지 타산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완숙꿀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 대표는 “‘가짜꿀’ 아니냐는 의심과 불신을 종식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완숙꿀을 채취하게 되면 국내 어느 양봉농가에서나 온스농장처럼 플라보노이드 함량이 높은 꿀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동욱 피지에이(PGA) 생태연구소장(전 국립생태원 연구본부장)은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 특성상 사철 피어나는 꽃들에서 채집된 다양한 성분들이 벌의 생리효소로 보존되어 1년간 숙성시킨 완숙꿀의 높은 효능은 기다림의 결과로 추정된다”며 “생물종이 다양한 전국 어느 곳에서나 이와 비슷한 수준의 훌륭한 꿀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백원기 대진대 교수(생명공학)도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이 좁아 한가지 꿀을 대량으로 채취하기 힘든데 여러 나무와 풀꽃이 포함된 잡꿀에서 좋은 효능이 확인된 만큼 농가의 소득증대와 생태계 보전에 선순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국가 차원의 벌꿀 생산, 유통, 가공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우리도 마누카꿀처럼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진대와 농촌진흥원 국립농업과학원이 2015년 실시한 국내 16종류 벌꿀과 뉴질랜드 마누카꿀의 성분 비교 분석에서도, 국내 대부분의 꿀은 마누카꿀과 견줘 과당·포도당의 함량은 낮았지만, 조단백질·조지방·무기질 등의 성분은 더 많이 함유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벌꿀의 등급제나 검증기관이 없고 농가에서 판매까지 책임져야 해 완숙꿀을 생산하는 농가가 매우 드물다는 게 심 대표의 말이다. “그동안 한국 양봉산업은 벌꿀 생산량이 세계 14위에 이를 만큼 큰 폭으로 성장해왔지만 수출량이 거의 없고 양봉이 축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빈약하죠. 우리 벌꿀의 우수성이 입증된 만큼 양봉농가의 자생력에만 맡겨두지 말고 우리도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심 대표는 특히 “뉴욕이나 유럽의 대도시들은 가로수를 밀원식물로 심어 도시양봉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최근 직장 은퇴자를 중심으로 도시양봉 인구가 급성장하고 있는데, 정부나 지자체가 헛개나무·피나무·산벚나무·백합나무 등 밀원수를 많이 심으면 양봉산업은 물론 기후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벌은 중요한 환경지표 중 하나이고, 기후위기 시대에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 제공자인 다른 축산업과 달리 양봉은 자연을 살리는 기능이 매우 큽니다. 이번 분석 결과를 계기로 우리나라 꿀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려 양봉이 국가의 전략산업으로 발돋움하면 좋겠습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