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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강남 4구’만 교통지옥으로 변한 까닭은

등록 2021-01-08 13:52수정 2021-01-08 23:07

서울 전역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6일 오후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한 시민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전역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6일 오후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한 시민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시작돼 8일 절정에 이른 ‘북극 추위’로 한반도가 꽁꽁 얼어붙었다. 근래 보기 드문 폭설과 한파에 지하철이 멈춰서고, 전국 각지에서 출근길 교통사고들도 잇따랐다. 특히 서울에서는 6~7일 저녁 퇴근길 심각한 차량정체가 빚어지면서 수많은 시민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평소 30~40분이면 충분했던 퇴근길이 서너시간으로 늘었다는 사례들이 속출했고, 길가에 차량을 버려둔(?) 채 귀가했다가 이튿날 아침에 찾아간 사례들도 잇따랐다.

이런 속에 서울시의 늑장 대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제때 제설작업에 나서지 않았고, 대책회의도 뒤늦게 열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문제를 제기했던 이들 대부분은 ‘강남 상황’을 사례로 들며 분노했다. 실제 극심한 정체와 차량 버려두고 퇴근하는 사례 대부분은 강남·서초구 등 일부 지역에서 일어났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인데 뭐가 달랐을까.

■ 강남 4구, 서대문·종로보다 4배 많은 눈

이번 교통대란은 일차적인 요인은 이례적인 수준의 폭설이었다. 특히 6일 오후 늦게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서초·강남·송파·강동구 등 ‘강남권’에 집중됐다. 이날 서울 적설량은 서초구가 13.7㎝로 가장 많았고, 강남·송파·강동구에도 모두 비슷한 양의 눈이 쌓였다. 서초구의 서쪽에 있는 동작구 적설량은 9.1㎝였다.

반면에 한강 이북인 서대문은 3.6㎝, 은평과 종로도 각각 3.7㎝와 3.8㎝의 눈이 쌓이는 데 그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상청에 문의한 결과, 한강에 기압골이 형성돼 눈구름대가 강을 못건너고 서초∼강동 쪽으로만 통과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강북지역보다 4배가량 많은 눈이 내렸다”고 말했다. 평소 서울에서도 집값이 가장 비싼 서초·강남·송파·강동구는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 4구’로 불리는데, 이날은 눈 많이 내린 ‘강남 4구’가 된 셈이다.

지난 6일 저녁 서울 올림픽도로 위에서 차들이 엉금엉금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6일 저녁 서울 올림픽도로 위에서 차들이 엉금엉금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서울시는 매뉴얼대로 했다지만…

여기에 결과적으로 서울시의 ‘뒷북’ 제설작업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지난 6일 서울지역엔 지역에 따라 오후 5시부터 눈발이 흩뿌렸고, 오후 6시30분께부터 본격적으로 큰 눈이 내렸다. 하지만 눈을 치우는 제설차량이 투입된 건 오후 7시20분이었다. 시간당 최대 7㎝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 1시간 넘게 지난 뒤에야 투입된 제설차량은 상황 해소에 별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서울시는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평소 매뉴얼대로 작업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눈이 내리자마자 오후 6시40분부터 대책회의를 열어 7시20분엔 제설대책을 2단계로 높여 눈 밀어내기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제설대책은 5cm 미만이면 1단계 5∼10cm면 2단계 10cm 이상이면 3단계로 나뉜다.

서울시는 눈이 내리기 시작해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려놨지만 5cm 이상 눈이 오면서 별 효과를 못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2단계 대책에 따라 도로에서 눈을 밀어내기 위해 제설차량이 투입됐지만, 퇴근시간대와 겹쳐 제설차량 진입이 어려웠다고 한다.

예술의전당 인근 직장을 다니는 40대 여성은 “남부터미널역에서 교대역 쪽으로 가다가 차가 섰다. 교대역사거리에서 고속버스터미널 쪽 오르막길을 차들이 오르지를 못해 신호등이 5번이 넘게 바뀌도록 차가 꼼짝도 안했다. 어쩔 수 없이 인근 골목에 차량을 세워두고 지하철을 타고 퇴근했다”고 말했다.

대설주의보 내려진 지난 6일 저녁 서울 삼성역 인근 도로에서 시민들이 수입차를 밀고 있다. 연합뉴스
대설주의보 내려진 지난 6일 저녁 서울 삼성역 인근 도로에서 시민들이 수입차를 밀고 있다. 연합뉴스

■ 퇴근시간 겹치고 얌체 운전도 ‘한술’

문제는 갑작스러운 폭설과 이에 따른 대처가, 퇴근시간대와 겹쳤다는 점이다. 수많은 고층빌딩이 밀집해있는 강남·서초지역은 평소에도 퇴근시간대에는 차들이 쏟아져나와 교통체증이 심해진다. 서울시는 폭설·한파에 도로 사정이 악화할 전망이라며 전날부터 대중교통을 이용을 권고했지만 이날 서울시내 자가용 이용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여기에 일부 운전자들의 이기심도 상황 악화에 힘을 보탰다. 이날 저녁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동작구 장승배기까지 4시간30분 걸려 퇴근했다는 50대 직장인은 “(이날 교통정체는) 갑작스러운 눈이 기본원인이지만 무자비한 교차로 진입과 꼬리물기가 이어졌고 버스전용차로를 진행하는 얼굴 두꺼운 승용차 운전자도 있었다”며 “입에서 절로 쌍욕이 터져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강대교 남단까지 이동해 노량진 쪽으로 들어선 순간 길이 뚫려 딴 세상이 열렸다”고 덧붙였다.

강남권 교통체증을 더한 또다른 이유로는 부촌인 이 지역에 눈길에 취약한 수입차들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벤츠, 페라리 등 수입차들 가운데는 뒷바퀴에 엔진 동력이 전달되는 후륜구동 방식이 많다. 국산 차는 승차감이 떨어지는 대신 눈길과 빗길에 강한 전륜구동이 대부분이지만, 후륜구동 수입차들은 승차감은 좋은 대신 눈길과 빗길에 약하다. 이날 에스엔에스(SNS)에는 “올림픽대로에 누군가 차량을 버리고 갔다”는 설명과 함께 빨간색 페라리 차량이 도로 한쪽에 서 있는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또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눈길에서 헛바퀴를 도는 수입차들을 손으로 미는 장면들도 여럿 목격됐다.

한편, ‘뒷북’ 제설작업 지적에 서울시는 공식 사과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은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시민들께 큰 불편과 심려를 끼친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이번 제설조치에 대한 시민들의 질책을 가슴 깊이 새기고 다시 한 번 긴장의 고삐를 죄겠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혼란과 불편이 재발하지 않도록 눈이 오면 치우는 사후적 제설대책에서 눈이 오기 전 미리 대비하는 사전 대책으로 전환하고 이번처럼 폭설에 한파가 동반되는 등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제설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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