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그린뉴딜 추진을 통한 2050 온실가스 감축 전략 기자설명회’에서 그린빌딩(건물), 그린모빌리티(수송), 그린숲(도시숲), 그린에너지(신재생에너지), 그린사이클(자원순환) 등 5대 분야에 2022년까지 2조6천억원을 투입하고 일자리 2만6천개를 창출하는 ‘그린뉴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이 갑작스레 숨지면서 시장 대행 체제 아래서 ‘박원순표 정책’들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박 시장의 정책 브레인 구실을 해온 별정직 30명가량이 한꺼번에 사직하게 돼, 불평등 완화 등 박 시장이 공들여온 각종 정책이 구심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권에서 군불을 때고 있는 그린벨트 해제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도 관심사다.
2011년 보궐선거에 당선되며 첫 임기를 시작한 박 시장은 이명박·오세훈 등 전임자들과는 차별화한 정책으로 9년간 서울시를 이끌었다. 전임자들이 청계천 복원과 세빛둥둥섬 건설 등 토건 중심의 성과를 내세운 것과 달리, 시민사회단체 출신인 박 시장은 도시재생과 복지 확대 등 서울시민의 생활을 바꾸는 데 주력해왔다.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청년수당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도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더불어 자치단체장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정책 대응에 나섰다.
임기 2년을 남겨두고 최근엔 정책·정무 라인 인사를 잇따라 단행하며 ‘막판 스퍼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5월 ‘전국민 고용보험’ 의제를 제시해 서울시정을 넘어 국가 차원의 정책 제안을 내놓으며 보폭을 넓히려 했던 게 대표적이다. 지난 5일엔 강남의 개발이익을 강북 등 다른 지역에서도 공유할 수 있게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국토교통부에 요청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 강조한 ‘부동산 국민공유제’와 관련해서도 추가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시청 안팎에선 다음 대선이 2년이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박 시장이 9년간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정책적 차별성을 부각하며 차기 여권 주자로 입지를 넓히려 할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았다. 실제 정책 라인 관계자들은 부동산 이슈 등에서 “박원순표 정책 2탄, 3탄을 준비하고 있다”며 최근 분주한 모습이었다.
내년 4월 보궐선거 때까지 9개월 동안 서울시정을 이끌게 된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시장)은 지난 10일 브리핑에서 “안전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박원순 시장의 시정 철학에 따라 (시정 운영은) 굳건히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대행은 박 시장 비서실장 출신으로 박 시장과 오래 호흡을 함께해와 정책 이해도가 높지만, 박원순표 정책들은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 시장은 직접 정책 설계에 관여하고 이후 세부사항까지 직접 챙기기로 유명해 그 빈자리가 큰데다, 정책 브레인 구실을 해온 비서실장과 특보단 등 별정직 간부들이 대거 당연퇴직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방별정직공무원 인사규정에서는 ‘지방별정직 공무원의 경우 임용 당시 지자체장의 임기 만료에 따라 함께 면직된다’(12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떠난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출신인 고한석 비서실장과 국회와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등을 거친 최병천 민생정책보좌관 등 27명에 이른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퇴임 뒤 자동면직됐던 박성훈 경제부시장을 변성완 권한대행이 재임용한 경우처럼, 정치권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참모 일부를 재임용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소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 영입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김우영 정무부시장은 임명직 공무원이라 남게 됐다.
시 안팎에서는 그린벨트 해제 문제가 박원순 없는 서울시정 흐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박 시장은 최근 부동산 문제가 불거지면서 거론된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 “미래 세대를 위해 지켜야 할 보물”이라며 반대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9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방자치단체는 획기적 (부동산) 공급 대책 수립을 위해 중앙정부에 협조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히며 서울시에 사실상 그린벨트 해제를 주문하는 등 압박이 나오고 있어, 대행 체제의 서울시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공무원 대다수 반대 속에 고한석 실장 주도로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진 국립중앙의료원의 중구 방산동 미 공병단 터 이전, 대한항공이 매물로 내놓은 경복궁 옆 송현동 터 매입 뒤 공원화 정책 등도 애초 계획대로 추진될지 관심이 쏠린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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