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화의 올망졸망]
“초등생이 고교생 될때까지 시장”
“이재명 경지지사는 제 아웁니다”
“뜻한대로 되지않는 운명적 직책”
“초등생이 고교생 될때까지 시장”
“이재명 경지지사는 제 아웁니다”
“뜻한대로 되지않는 운명적 직책”
6일 기자간담회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 연합뉴스
“초등이 고등학생 될때까지 시장이 박원순이었다고…” 이날 박 시장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이 질문이 나올 것 같은데 선제적으로 답하겠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임기가 9년이 되다보니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서울시장이 박원순이어서 ‘저 분이 직업이 서울시장인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 시장이 도대체 지난 9년동안 뭐했냐는 질문이 반드시 나올 것 같다”며 “도시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많은 시민들의 삶과 꿈을 회복시키는 시간이었다”고 ‘자문자답’했다. “어찌보면 요란하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난 세월은 조용한 혁명을 했다고 감히 평가하고 싶습니다. 10년 가까운 긴 호흡을 가지고,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한결같은 원칙을 가지고 도시를 운영해온 것이 저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발만능의 도시가 아니라 인간중심, 사람중심의 도시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박 시장은 유례없는 ‘3선 서울시장’으로 전국민의 주목을 꾸준하게 받아왔다. 이런 그가 최근 가장 빈번하게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무엇을 했냐”다.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 복원 등과 비견될 만한 ‘한 방’이 없다는 지적이 이 질문에 깔려 있다. 박 시장 쪽에선 이 지적이 “단점이자 장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평가하며 장점을 최대한 강조하고 있다. 박 시장 쪽 관계자는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한 방이 없다지만 이는 토건 중심의 성과와 결이 다른, 생활을 바꾸는 시정을 보여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날도 “9년 간 뭐했냐”는 공격이 우려되자 박 시장은 자문자답으로 ‘선방’을 날린 셈이다. 이후 더이상 “뭐했냐”는 질문은 없었다. _______
“이재명 지사는 제 아웁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관련 질문도 예상 질문 중 하나였다. “이 지사와 시장이 라이벌이라는 말에 동의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시장은 “이 지사는 제 아우”라며 웃었다. 그는 “자꾸 갈등을 유발하려고 노력 안 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기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지사는 본인이 박 시장 정책을 베낀 것도 많은데 부각은 본인만 돼서 박 시장이 억울할 거라 (최근 경기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다”고 하자 박 시장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서울시 정책은 베껴가라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방, 중앙정부 할 것 없이, 세계적으로도 베껴가잖아요. …사실 코로나19 대응을 보면서 서울시가 그렇게 잘하나 의심하셨을 텐데 객관적으로 보면 뉴욕에서 3만2천명이 숨진 걸 보면 우리가 잘한다는 걸 객관적으로 인정하게 될 겁니다.” 박 시장은 이어 “이 지사가 훌륭한 것”이라며 “서울시꺼 다 보고 가져가서 더 잘 하고 청출어람이지 않냐”고 말했다. 이날엔 포용하는 제스쳐를 취했지만 사실 박 시장은 이 지사에 몇 차례 각을 세운 바 있다. 이 지사가 전국민 기본소득을 아젠더로 들고 나온데 반해 박 시장은 전국민 고용보험을 복지 정책의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지난달 라디오에 나와 이 지사의 기본소득 계획을 언급하며 “그 돈이 어디서 나오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재원 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지사가 긴급재난지원금을 도 차원에서 지급하며 전 도민을 그 대상으로 삼은 데 반해 박 시장은 ‘중위소득 100% 이하’로 지급 기준을 달리 잡으며 부지런히 차별화를 꾀하기도 했다. 이날 박 시장은 이 지사 정책과 관련해 날을 세우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박 시장 정책을 베꼈다”는 이 지사의 표현을 부정하거나 반대로 본인이 이 지사의 정책으로부터 배웠다며 덕담을 돌려주진 않았다. 두 사람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어떨까. 코로나19 국면이 다섯여달 지난 현재 이 지사의 대선 후보 지지율은 15% 안팎까지 상승하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2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박 시장의 지지율은 2%에 머무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해 12월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도권 공정경제협의체 발족식 및 업무협약식’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대통령은 운명적 직책이다” ‘대선 출마’ 질문 역시 예상 질문 리스트에 있었을 것이다. 역시나 질문이 나오자 박 시장은 “저는 대통령이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안 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입을 뗐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레임덕 없이 5년을 제대로 (마무리)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내년쯤이 되면 대선 관련 논의가 훨씬 더 활발하게 이뤄지겠지만 아직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선 질문을 한 번에 그칠 기자들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냐”는 질문이 또 나왔다. 박 시장은 “대선 부분은 지금 얘기를 다 하면 재미가 없지 않냐”며 “다음 기회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확답은 피했지만 박 시장의 최근 행보는 다음 대선을 향하고 있다. ‘정치,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돼온 가운데 최근 시 인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출신을 포함해 ‘여의도 인사’들을 여럿 영입했다. ‘지난 총선에서 박 시장과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10명 이상 당선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지난달엔 이들을 모아 모임 자리도 가졌다. 박 시장이 이날 경기 성남 분당갑을 지역구로 뒀던 김병관 전 국회의원을 시청 특위 위원장으로 초빙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박 시장 쪽 인사들은 이미 발표한 ‘전국민 고용보험’ ‘강남 부동산 개발이익 타 지역 분배’에 이어 3탄, 4탄의 정책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대선을 지금 얘길 다 하면 재미없지 않냐”는 답변엔 이미 출마에 대한 속마음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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