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여성인권연대와 경기여성연대 등 경기지역 여성단체들이 29일 오후 2시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지촌 여성 지원 조례 통과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홍용덕 기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주한미군 기지 주변의 ‘기지촌 여성’의 생활안정 등을 지원하는 조례안이 제정됐다. 서울고법에서 기지촌 여성의 인권 유린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했지만 국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경기도의회에서 7년 만에 해당 조례안을 의결했다.
경기도의회는 29일 열린 본회의에서 김종찬(더불어민주당·안양2)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했다.
기지촌 여성 지원 조례안은 2014년 이후 3차례 경기도의회에 발의됐으나 그동안 경기도의 반대로 무산됐다가 이번에 4번째 발의돼 통과됐다.
조례안이 통과됨에 따라 사회적 낙인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기지촌 여성에게 지방정부가 생활안정과 복지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 조례안은 기지촌 여성의 생활안정 등을 위해 △임대보증금 지원 및 임대주택 우선 공급 등 주거 혜택과 △생활안정 지원금 △의료 급여와 장례비·간병인 지원 등을 위한 행·재정 적 지원을 경기도가 하도록 규정했다.
지원대상은 1945년 9월8일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이후부터 2004년 9월23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전까지 도내 주한 미군 부대 주변 기지촌에서 일한 여성이다. 경기도는 도내 기지촌 여성이 35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김종찬 의원은 “기지촌 여성들이 대부분 70~80대의 고령인 데다 건강 문제와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렵게 사는 상황에서 더 늦기 전에 최소한의 지원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경기도도 조례안이 도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종군위안부와 함께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여성 인권침해 사례인 기지촌 여성에 대한 조사와 지원은 피해자 구제는 물론 향후 있을 수도 있는 또 다른 여성의 인권침해를 막는 길”이라며 환영했다.
미군 부대 주변 기지촌 여성들이 정부로부터 발급받은 (성병) 검진증. 중앙대 이나영 교수 발표 자료.
이번 조례안은 중앙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지방의회가 나서서 전국 처음으로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침해에 따른 피해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울고법은 2018년 2월8일 기지촌 출신 여성 11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한민국이 군사 동맹과 외화 획득을 위해 미군 기지촌을 운영 관리하면서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조장한 책임이 있다”며 이들에게 300만~700만원의 위자료와 그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의 판단은 국가의 미군 기지촌 성매매 책임을 처음 인정한 것이었으나 이후 대법원에 최종 판단이 계류 중인 상태다.
기지촌 여성을 돌봐온 평택 햇살복지회 우순덕 원장은 “나라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애국자라며 나이가 들면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잖아요. 서울고법에서도 국가책임을 인정했으나 국가도 여전히 손을 놓고 있어요. 경기도가 기지촌 여성을 지원하면 (대법원에서 결정이) 긍정적으로 탄력을 받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지촌여성인권연대와 경기여성연대 등 경기지역 여성단체들은 이날 오후 2시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금이 사건으로 촉발되었던 기지촌 여성 인권문제가 참으로 긴 세월을 거쳐 오늘 경기도 조례의 형태로 한 매듭을 지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조례안을 계기로 21대 국회에서는 19, 20대 국회 당시 입법을 추진하다 무산된 기지촌 성매매 여성문제 진상 규명 및 지원 특별법의 통과와 함께 평택, 의정부, 동두천 등 미군 기지촌 소재지에서 관련 조례안이 퍼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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