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장항습지에 재두루미와 기러기 등 겨울철새 수천마리가 찾아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지난 17일 찾은 한강하구 장항습지는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습지의 절반가량을 뒤덮고 있던 가시박, 환삼덩굴, 단풍잎돼지풀 등 생태계 교란 식물과 갯골 곳곳에 가득 차 있던 생활쓰레기들도 말끔히 치워져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와 흰꼬리수리, 큰기러기를 비롯한 2천여마리의 야생조류가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날 장항습지 무논에서 잠을 잔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 17마리는 오전 9시30분께 먹이활동을 위해 강 너머 김포 홍도평야 쪽으로 날아갔다. 동행한 박평수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장은 “며칠 전까지 장항습지 안 잠자리 2곳에서 재두루미 51마리가 확인됐다. 작년보다 4마리가 늘었는데 오늘은 강추위로 무논이 얼어 일부가 김포에서 잔 것 같다”고 말했다.
박평수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장이 지난 17일 경기도 고양시 장항습지에서 가시박 제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장항습지가 다시 ‘생태계의 보고’란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있는 것은 지난해 1월7일치 <한겨레> 보도(‘장항습지’가 ‘장항육지’ 됐다) 이후 고양시와 한강유역환경청이 예산 4천만원을 긴급 투입하고 연인원 700여명의 민관군이 힘을 모은 결과다.
지난해 1월 찾은 장항습지의 모습. 바닷물과 강물이 넘나들며 버드나무 군락을 적셔줘야 할 갯골에 각종 생활쓰레기가 가득 차 있다.
박 지부장은 “갯골 일부에 물길을 내자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붉은발말똥게(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개체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조금만 더 방치했더라면 장항습지의 깃대종인 선버들 군락지도 망가졌을 텐데 고사 위기를 넘겨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식환경에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생태계 보전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활동, 종합관리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쓰레기가 말끔하게 치워진 뒤 물에 잠긴 고양 장항습지의 갯골.
고양시는 올해도 관련 예산 6천만원을 편성해 습지 보전에 나섰다. 또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장항습지에 대한 람사르습지 등록을 추진하기로 하고, 지난 15일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 지역주민 등이 참가한 가운데 람사르습지 등록 추진 설명회를 열었다. 환경부는 주민 의견 수렴과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올해 상반기 안에 람사르협약 사무국에 장항습지의 람사르습지 등록을 신청할 방침이다. 람사르협약은 습지의 보호와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해 1975년 발효된 국제습지보호조약으로, 우리나라는 23곳(199㎢)이 등재돼 있다.
지난 17일 재두루미들이 얼음이 꽁꽁 언 고양 장항습지의 무논 위를 걷고 있다.
총면적 7.5㎢(육지 2.7㎢, 수면 4.8㎢) 규모의 장항습지는 대륙 간 이동 물새의 서식처이자 중간 기착지로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20여종을 비롯해 3만여마리의 물새가 찾는 생태계의 보고로 꼽힌다. 2006년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고, 지난해 5월 철새보호 국제기구인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 파트너십’(EAAFP)에 등재됐다.
하지만 육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는 “2010년 이후 전국적으로 큰 홍수가 없고 댐·보가 많아지면서 하천에 새들이 먹이활동을 할 수 있는 갯벌과 모래가 줄어든데다, 퇴적지에 갈대밭이 조성되는 등 육화 진행이 심각하다”며 “하천 생태계 회복을 위해 팔당댐을 일시에 열어 물을 방류하는 등 인공홍수에 대한 연구·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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