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자 46명이 7일 오전 경기 평택시 쌍용차 본사로 복직 뒤 첫 출근을 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0여년 만에 복직하는 아버지를 위해 딸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 손으로 직접 목도리를 떴다. 초등학생이던 딸이 대학생이 되기까지 해직자로서 고통의 시간을 견뎌온 아버지께 건넨 복직 축하 선물이다. 7일 아침 8시,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정문 앞에 선 조문경(57)씨의 목에는 눈처럼 흰 새하얀 목도리가 둘려 있었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비가 오니까 눈물이 난다. 기뻐해야 할 날이지만 지난달 24일 회사로부터 복직 연기 문자를 통보받아 답답한 마음만 가득하다. 회사로 들어가서 다시 투쟁하겠다.” 해고된 지 10년7개월 만에 다시 출근하게 된 이덕환(49)씨가 말했다. 그의 ‘슬픈 다짐’에 조씨의 눈시울도 이내 붉어졌다. 이날, 마지막 남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46명의 첫 출근을 축하하는 꽃다발 전달식이 열린 쌍용차 본사 정문 앞으로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들 46명은 2009년 6월8일 해고됐다. 이날 출근은 해고일로부터 3865일 만이다. 환영받아야 할 발걸음이지만, 이들은 다시 ‘투쟁’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쌍용차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지난달 크리스마스이브에 복직 연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약속을 깬 회사에 이들은 출근을 강행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이날 출근길에 나선 김득중 전 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장은 “회사의 연기 통보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삼키고, 출근해 당당하게 부서 배치 및 업무 배치를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정문에서 사원번호와 신분 확인을 거쳐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을 비롯한 해고자 46명이 7일 오전 경기 평택시 쌍용차 본사로 복직 뒤 첫 출근을 하고 있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공장 안에서는 지난해 1월 먼저 복직한 전 해고노동자 10여명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즉각 부서 배치’ 등이 적힌 펼침막을 들고 회사 쪽의 무기한 휴직 결정에 항의했다. 지난해 1월3일 복직한 김선동(52)씨는 “46명 동지의 첫 출근을 축하하기엔 마음이 너무 무겁다”며 “노동자가 어떻게 노동을 하지 않고 임금을 받겠는가. 우리는 당당하게 일하고 노동의 대가를 받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은 ‘사회적 대타협’의 결과였다. 2018년 9월14일, 쌍용차와 쌍용차 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해고노동자), 정부 대표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09년 쌍용차 사태 당시 해고된 노동자 전원의 복직을 합의했다. 노사가 합의를 끌어냈고, 정부가 경영 지원을 약속한 결과다.
하지만 지난달 말까지 모든 해고자를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쌍용차는 지난달 24일 경영 악화를 이유로 남은 해고노동자 46명에게 문자메시지로 ‘무기한 휴직’을 통보했다. 쌍용차 쪽은 “이들 휴직자 46명은 지난해 7월 복직이 결정됐고, 올해부터 임금 70%가 지급된다. 순환 휴직을 실시 중인 사무직 노동자와 동일한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예병태 쌍용차 대표이사는 이날 복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회사 경영 상황이 어려워 (복직자 46명의) 부서 배치가 미뤄질 수밖에 없다. 회사도 노력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쌍용차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아 복직자들이 일할 자리를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쌍용차 노조 쪽은 ”9·14 노노사정 합의를 지키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는 “46명에게 업무 배치를 하지 않는다면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휴직 구제신청, 법원에 임금차액 지급 가처분신청 등 모든 법적 절차를 밟아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들 노동자 46명은 매일 출퇴근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10여년의 지난한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평택/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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