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산등성이에 타운하우스가 들어서기 시작할 당시의 모습. 용인시 난개발 조사특위 제공
유치원은 위태로워 보였다. 지상 4~5층 규모의 유치원 뒤쪽으로 뻗어 있는 산기슭은 곳곳이 파헤쳐진 채 녹색 그물망으로 덧씌워져 있었고, 황톳빛 땅에선 풀 한포기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장마철이 되면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겁이 나요.” 7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한 유치원 관계자는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치원 뒤편의 가파른 산자락에는 단독주택 허가가 났지만 수년째 방치된 상태다. 이 관계자는 “장마철이면 산사태가 염려되고, 평상시에는 흙먼지가 날려 용인시에 수차례 항의했으나 ‘이미 허가가 나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계속됐다”고 말했다.
용인은 ‘막개발’이 이뤄진 대표적인 도시다. 서울과 인접한 탓에 1990년대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단독주택지가 들어서는 등 마구잡이식 주택 건설이 이뤄졌다. 2016년 인구 100만명을 넘어선 용인시의 ‘막개발’은 ‘현재 진행형’이다. 13m나 되는 보강토 옹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은 주택을 비롯해, 잇단 쪼개기 개발로 산등성이와 등산로까지 훼손한 단독주택지 등으로 지역 주민들은 고통받고 있다. ▶관련기사 8면
과거 용인의 막개발이 대규모 아파트 위주로 진행됐다면, 이제는 이 개발 바람이 타운하우스로 옮겨붙었다. 중소 전문개발업자가 전원주택으로 소개하는 ‘타운하우스’는 용인시 건축허가의 허점에다 주택법 적용까지 피하면서 용인의 새로운 막개발 열풍을 이끌고 있다. 용인의 타운하우스는 산기슭 1만~4만여㎡에 수백가구의 단독주택단지로 조성된다. 주택법은 5천㎡ 이상에 30가구 이상을 지을 때, 주택공급에 관한 기준을 적용받도록 한다. 하지만 사업지를 1곳당 5천㎡ 미만으로, 가구 수도 사업지역 1곳당 30가구 아래로 쪼개면, 단독주택으로 분류돼 이 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는 허점이 있다. 환경영향평가 등 모든 규제 심의 대상에서 빠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타운하우스 사업자들이 한 사업지구를 여러 단위로 쪼개서 개발하는 것이다.
지난 4월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산등성이에서 타운하우스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모습. 용인시 난개발 조사특위 제공
타운하우스끼리 연결되는 연접개발까지 겹치면서 쓰레기처리장과 주민공동시설 등의 부대시설은 물론 도로 등의 기반시설과 학교 부족은 주민 피해로 돌아온다. 가파른 산지를 이용하며 경사도를 맞추다 보니 13m 높이의 옹벽 위에도 아슬아슬하게 집이 지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 자리한 타운하우스다. 가파른 산을 파헤친 땅에 타운하우스 100가구가 들어서 있다. 보전녹지와 자연녹지던 이곳 땅 3만여㎡는 최대 4981㎡에서 최소 1005㎡의 블록 9개로 쪼개져 건축허가를 받은 뒤, 100가구 규모의 타운하우스 단지로 탈바꿈했다. 이런 타운하우스는 처인구와 기흥구 등 용인 산자락 곳곳에 파고들어 있다. 이런 막개발은 ‘용인시의 직무유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민대표, 시민단체 활동가, 건축사 등 민간 전문가 9명으로 꾸려진 ‘용인시 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난개발 조사특위)는 지난해 8월부터 약 열달 동안 용인 지역의 막개발 실태를 조사해 지난 4일 펴낸 활동백서에서 “중앙정부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개발행위 허가 업무를 지방정부에 위임했고, 지방정부는 건축허가 세부 규정을 조례로 정해 시행하는데 표고와 경사도 완화 등의 안이한 행정이 (막개발의)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난개발 조사특위의 백서를 보면, 실제로 건축 등 개발행위가 가능한 용인시의 경사도는 수지구 17.5도, 기흥구 21도, 처인구 25도다. 이것도 2015년 수지구 17.5도, 기흥구 17.5도, 처인구 20도에서 완화된 것이다. 이는 주변 지방정부의 경사도와 견줘보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인근 수원시는 경사도가 10도 미만인 곳에서만 건축할 수 있다. 성남시와 화성시도 건축이 가능한 경사도는 15도 미만이다. 용인의 비탈진 산속에도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경사도 15도 미만의 산지는 용인시 전체 산지의 74.2%에 이른다. 지금처럼 경사도를 최대 25도까지 허용하면 용인 전역에서 건축이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느 지방정부와 달리 용인시가 급경사지를 포함한 산지 개발이 쉽도록 제도적으로 길을 터준 셈이다.
지난 1월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의 모습. 물류창고 건축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산자락이 잘려나갔다. 용인시 난개발 조사특위 제공
이뿐만이 아니다. 용인에는 산지에서 개발 가능한 높이인 표고(해발고도) 제한도 없다. 수원시가 표고 100m 미만으로 건축을 제한하고, 화성·광주·이천시도 표고 50m로 제한을 두는 것과 달리 용인시는 건축을 허가할 때 표고를 제한하지 않는다. 용인시는 숲의 나무 밀도 지표인 입목 축적도가 150% 이하일 때만 건축허가를 내주지만, 산림의 나무가 울창하지 않아 입목 축적도를 초과하는 곳이 없어, 대부분의 지역에서 건축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규모 산업단지의 확산도 용인 지역의 막개발에 한몫하고 있다. 용인시에 조성 중인 산업단지는 현재 29곳으로, 이 가운데 92.3%가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 에너지 사용계획 수립 대상에서 제외되는 15만㎡ 이하의 소규모 산업단지다.
난개월 조사특위는 부문별로 대안을 제시했다. 개발행위허가와 관련해 산지개발의 경우 해당 산의 6부 이상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해 능선부를 보호하는 제어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옹벽 등의 높이 제한 규정을 마련해 위험을 초래할 정도의 과도한 옹벽이나 비탈면 설치를 제한하고,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나 교통영향평가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른바 쪼개기 개발과 단독주택단지 건설로 산능선부까지 훼손된 경기 용인시 타운하우스 건설 현장의 모습. 용인시 난개발 조사특위 제공
용인시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금까지 제한하지 않은 표고 기준을 지역별로 145~205m로 입법 예고하고, 경사도 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막개발 대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높다. 용인 처인구 마평동의 경우 표고기준이 185m이지만 실제로 가장 높은 산은 160m로 사실상 산 정상까지도 막개발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막개발 방지에 실효성이 크지 않은데도 개발업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시가 지역 발전을 막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난개발 조사특위를 출범시킨 백군기 용인시장은 “공직자들에게 난개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것만으로도 조사특위는 대성공”이라며 “위원들이 혼신을 다해 만든 백서를 참조해 앞으로 난개발 없는 친환경생태도시 용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