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 전세사기 피해자 고홍남씨. 이승욱 기자
“전세사기 피해를 본 재외동포들에게 관련 기관은 국민이 아니라서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1일 인천 송도에 있는 재외동포청 앞에서 중국 국적 재외동포 고홍남(42)씨와 그의 가족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고씨는 지난 2015년 아내와 함께 중국으로 갔다가 딸을 낳고 지난 2019년 다시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이주한 재외동포다. 평화롭던 고씨의 일상은 지난 2021년 인천 미추홀구에 전셋집을 구한 뒤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씨는 2021년 12월31일 5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내고 집주인인 이아무개(53)씨와 전세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후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이씨는 고씨와 전세계약 당시 신탁사로부터 돈을 빌린 뒤 집에 대한 관리를 신탁사에 맡긴 상태였다. 이에 고씨와 이씨의 계약은 법적 효력이 없었고 신탁사는 이후 고씨가 살던 집을 경매로 내놓았다.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경우 경매를 중단하는 지침이 있었지만 고씨와 이씨의 계약은 법적 효력이 없었기 때문에 지침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낙찰자에게서 이번 주까지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은 고씨는 다른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저리 대출과 긴급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관련 기관에 문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허그(HUG·주택도시보증공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규정에 따르면, 저리 대출과 긴급 주거 지원 대상은 한국 국민이기 때문에 재외동포인 고씨는 제외되기 때문이다.
고씨의 아내는 “공장에서 야간 잔업을 하면서 힘들게 돈을 모아 전셋집을 얻어 기뻐했는데 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고 나서 초등학생 딸밖에 생각나지 않았다”라며 “저희의 호소를 들어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고씨도 “큰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전세사기 결론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우리 가족이 버틸 수 있는 방 1칸을 얻을 수 있게 해달란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인천시 주택정책과 쪽은 “국토교통부에 전세사기를 당한 재외동포에게도 저리 대출, 긴급 주거 지원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건의를 한 상태”라고 말했다. 재외동포청도 국토교통부 등에 전세사기를 당한 재외동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고 공식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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